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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에 복수노조가 들어섰다. ‘친기업 노조’라는 지적을 받아온 기존 KT 노동조합에 맞서 민주노총 계열 새 노조가 조합원 10명으로 출발한 것이다.
노조설립필증 발급을 하루 앞둔 1일 낮 점심 시간을 이용해 KT 을지지사에서 일하는 이해관(48) KT 새 노조 위원장을 만났다. 자전거를 타고 을지로3가 일대를 누비며 전화와 인터넷 애프터서비스(AS)를 담당하느라 업무 시간에는 도저히 짬을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해고자 생활 12년… 복직 4년 만에 새 노조 설립
금방 작업을 마치고 왔는지 얼굴에는 땀이 가득했고 작업복 상의에는 전선을 묶는 데 쓰는 케이블 타이가 한 다발 꽂혀 있었다.
“지금 맡은 일을 한 지 4개월 밖에 안 돼 아직 익숙지 않아요. 그래도 많이 좋아져서 이제 주변에 도움 구하는 일도 별로 없어요.”
1995년 김영삼 대통령이 노조를 국가전복세력으로 규정하고 탄압했던 ‘한국통신 사태’ 당시 KT 노조 수석 부위원장이던 이 위원장은 해고 12년 만인 지난 2007년 복직했다. 자신을 해고했던 회사에 다시 들어와서 1년에 한 번씩 낯선 곳으로 옮겨야 하는 상황조차 이 위원장은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2007년 복직 후 혜화 전송실, 청량 전송실, 을지 전화국 영업 일을 거쳐 여기로 왔어요. 나름대로 사람 대하는 일은 잘 맞아서 영업할 때에는 중간 정도는 했어요.”
이마에 맺힌 땀이 채 식기도 전에 식사를 마친 이 위원장은 “휴대폰에 깔려 있는 사내 프로그램으로 하루 종일 실시간으로 업무 상황이 체크돼 오후 1시까지는 회사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덩달아 마음이 급해진 기자도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옮겨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이해관 위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이석채 체제, 혁신은커녕 ‘낙하산 인사’로 국민 욕 먹어”
– KT에는 이미 노조가 있는데 새 노조를 만든 계기가 무엇인가.
“이석채 회장 체제에 애당초 (혁신에 대한) 많은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이석채 회장 취임 2년이 다 돼 가는 지금 무엇이 바뀌었느냐는 의문이 생긴다. 오히려 주주들에게 퍼주기 경영이 더 심화되고, 구조조정하면서 경영진이 성과금 챙겨가고, 노골적으로 낙하산 인사를 하고. 국민에게 욕 먹으려고 작정한 기업경영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이런 이석채 회장 체제에 대한 비판이 겉으로는 나오지 못하지만 밑바닥에는 깊게 깔려 있다고 본다. 그런 문제의식을 끄집어내 결집하는 역할을 기존 노조가 다하지 못했다. 인력퇴출프로그램인 CP(C-player; 성과 부진자) 관리 등을 통해 가혹한 노동인권 탄압을 겪은 직원들이 양심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은평전화국에서 자살한 KT 직원은 유서도 없었는데 참 무섭다고 생각한다. 정말 자기가 목숨을 던져서라도 나아질 거라는 기대가 있었으면 유서라도 썼을 것이다. 이게 (KT의) 현실이다. 이렇게 ‘가스’는 깔려 있기 때문에 ‘스파크’를 일으키면 폭발력은 있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새 노조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으면 하는 기대를 갖고 있다.”
KT에서 지난 2006년부터 도입한 인력퇴출 프로그램인 CP는 지난 4월 전 KT 관리자의 양심선언으로 실체가 알려졌다. KT 쪽은 CP 프로그램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있지만 KT민주동지회 등 과거 노동조합 활동에 적극적이었거나 회사 정책에 비판적인 직원들을 퇴출시키는 도구로 악용된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지난 6월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KT 민영화 폐해와 대안 토론회’에 따르면 CP 프로그램 대상으로 선정된 사원들을 생소한 단독 업무에 투입해 달성이 어려운 목표를 지시하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징계조치하고 비연고지로 전환배치하는 과정을 반복해 스스로 회사를 나가도록 유도한다고 한다.
지난 7월 16일 숨진 KT 서울북부마케팅단 은평지사 강아무개(50)씨 역시 CP 대상자로 원래 전송 분야에서 오랫동안 근무했지만 지난해 7월부터 현장 개통·보수 업무로 전환 배치돼 업무 부적응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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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낮 점심시간을 이용해 나온 이해관 KT 새노조 위원장 작업복 상의에 케이블 타이가 수북하게 꽂혀 있다. |
ⓒ 김시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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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노조를 정치운동 세력으로 보는 경영진이 더 정치적”
– 기존 KT 노조를 ‘회사의 노무 관리 대행 조직’이라고 깎아내린 근거가 무엇인가?
“KT는 그렇게까지 구조조정을 해야 할 만큼 어려운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 많은 직원을 내보내는 구조 조정에 버젓이 합의하고, 구조조정에 응하지 않은 사람을 전환배치하는 데 (노조의) 보호장치가 없었다.
‘노조가 뭘 하는 거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KT에서) 2009년 이후 벌써 14번째 사망자가 나왔는데, 하다못해 노동조합에서 국정조사라도 요청하고 노동부에 근로감독이라도 요청해야 정상 아닌가.”
KT는 지난 1997년 IMF 이후 총 9차례 구조조정을 실시해 6만 3000여 명에 달했던 사원수가 현재는 3만 5000명 선으로 줄어들었다. 특히 2002년 민영화 이후 2003년에 5505명, 2009년에 5992명 등 대규모 구조조정이 이뤄졌다.
– 사측은 기존 노조가 노동자의 권익을 위하는 노조인 반면, 새 노조는 정치운동 세력으로 보면서 영향력이 없을 것이라고 보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생각하나?
“새 노조를 정치운동 세력으로 보는 경영진이 오히려 정치적이라고 생각한다. 이 직장을 다니는 사람은 정권 코드를 맞추는 (회사 경영을) 당연히 비판해야 하고 노조는 그것을 대변해야 한다. 영향력이 작은지 큰지는 두고 볼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거꾸로 그 분들이 우리를 정치적으로 본다는 것 자체가 이쪽의 영향력을 의식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 새 노조 설립 과정에서 회사 쪽의 압박은 없었나?
“회사는 ‘오비이락’이라 주장하겠지만 최근 해고된 원병희, 강순무씨는 새 노조를 만드는 데 핵심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다. 우회적인 탄압이다. 나에게도 여러 노동 통제가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지난 6월 27일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실에서 주최한 KT 민영화 관련 토론회에 참석하려고 연차 휴가를 1주일 전에 냈는데 아직도 결재 처리가 안 됐다. 당일 아침에는 팀장이 “장마로 AS 폭주가 예상되니 출근하라”는 문자를 내리 세 번을 보냈다.
또한 AS 업무를 하면서 KT가 국가기관일 때 갖고 있던 국민들의 개인정보에 대한 동의를 고객들에게 받으라는 지시가 있었다. 그런데 이 업무를 실적화하니까 직원들이 개인정보 사용동의라는 말은 안 하고 서명을 받는다. 나는 원칙대로 말하고 서명을 받으니 2~3일에 1건이 고작인데 다른 사람들은 하루에 3~4건씩 서명을 받는다. 이 때문에 (더 강도 높은 업무룰 요구하는) ‘업무지시서’를 받았다.”
“제3노총, 사회적 화두와 반대… 노동자들에게 설득력 없어”
– KT 노조가 제3노총에 참여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KT 노조는 안 가거나 못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제3노총이 ‘노사 상생’을 얘기하는데 현재 사회적 화두는 그 반대이기 때문이다. 기업이 아무런 통제장치 없이 자기들 돈 버는 데로 무한질주하고 있는데 사회가 (기업이) 책임을 다하도록 하는 것이 현재 화두라고 본다.
오죽하면 여당 홍준표도 취소하긴 했지만 ‘대기업’ 하면 ‘착취’라는 말이 떠오른다는 얘기를 했을까. 이런 상태에서 제3노총이 설득력이 있을까? 내가 몸담고 있는 KT만 해도 노동자들이 경영진의 일방적인 질주에 브레이크 거는 노조를 원하지, 짝짝쿵 잘해서 돈 더 벌라는 건 호응받지 못할 것이다.”
– 제3노총을 준비하는 정연수 서울지하철노조 위원장은 과거 민주노총 소속 노조에서는 회사와 싸운 것 밖에 한 게 없고, 현 노조가 오히려 협상으로 얻을 것 얻고 정리해고도 최소화했다고 얘기하는데?
“터무니없는 얘기다. 임금도 실질임금으로 따지면 하락했다. 과거 노조가 한 게 없다는 얘기에 대해서는 KT가 공기업이어서 국정감사 때 감사를 받던 시절 가장 큰 쟁점이었던 임금 가이드라인을 깬 것을 얘기하고 싶다. 당시에는 정부에 맞서야 해 정치 투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민주노조운동으로 지긋지긋하던 관치를 깼다. 물론 이후에 신자유주의가 득세해 IMF 이후 민영화가 됐지만, 이제 또 다시 새로운 장이 열리고 있다고 본다.”
– 복수노조법이 KT와 우리 노동 운동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이라 생각하나?
“정부가 노동조합운동을 무너뜨리기 위해 복수노조법을 시행한 것은 명백하다. 노동계 입장에서 복수노조는 고통스럽다. 이미 대부분 사측에 의해 통제되는 복수노조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KT의 경우는 다르다. KT는 사측의 개입이 일상화·만성화돼 있고, 오너 없이 정치적인 정세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지배구조에서 해외주주·정권·경영진의 동맹이 견고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KT 내부에서 경영진에 공개적인 비판을 제기할 수 있는 집단이 출현한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고 영향력도 있을 것이다. 일반적인 복수노조 흐름의 반노동자 성격과는 다르게 KT에서는 복수노조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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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관 KT 새 노조 위원장 뒤편으로 자신이 일하는 KT 을지지사가 보인다. |
ⓒ 김시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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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노동자들 꿈 잃고 망가진 모습에 가슴 아파”
– KT에서 해고되고 12년 만에 복직 후 또 다시 노동 운동에 뛰어든 계기가 무엇인가?
“복직하고 가슴이 많이 아팠다. KT 사람들이 망가져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미래와 꿈을 향해 나가는 사람들이 정말 거의 없다. 전부 다 ‘이렇게밖에 할 수 없다는’ 불가피성에 눌려 있는 것이다. 미래가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이 없으면 힘든 게 직장생활인데, “애 대학만 졸업하면 떠날 것 같다”는 식이다.
또한 업무적으로도 자기 실적에 시달리기 때문에 서로 잘 안 도와주고 타자에 대한 관심도 없다. 누구 하나가 옆에서 따뜻한 소리를 해 줬다면 그렇게 자살하는 사람들이 나왔겠나. 이런 것에 대한 분노가 컸다. 그런 상황에서 김은혜 낙하산 인사에 대해 분노해 집회 나가서 한 마디 했는데 그 이후 겪은 일이 (분노에) 불을 붙인 것 같고 그래서 하게 된 것 같다.”
지난해 12월 KT에서 전무로 영입한 김은혜 전 청와대 대변인은 대표적인 ‘낙하산 인사’로 거론된다. KT 민주동지회 소속 직원들은 지난 1월 이석채 회장 타워팰리스 자택 앞 집회와 3월 주총에서 낙하산 인사 문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특히 이해관 위원장은 집회 참석 때문에 인사조치 압박을 받고 김은혜 전무에게 공개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관련기사: “김은혜 ‘낙하산 인사’ 비판했더니 ‘보복 인사'” ).
더 듣고 싶은 얘기가 많았지만 점심시간이 끝나는 오후 1시가 다가오자 이 위원장은 자꾸만 시계를 들여다봤다. 이 위원장은 잔에 담긴 물을 벌컥벌컥 마신 뒤 대기 중인 AS 건을 처리하러 서둘러 자리를 떴다.
KT 새 노조는 2일 고용노동부 서울서부지청에서 노조설립필증을 발급 받았다. 이와 별도로 KT민주동지회에선 오는 11월 기존 노조 위원장 선거에도 후보를 낼 예정이다. 그때까지 새 노조는 조합원 숫자를 늘리기보다 이석채 회장 체제 비판과 대외 홍보 활동에 주력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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