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네트웍스, 유망 중기와 계약 맺은 뒤 일방 해지
KT네트웍스가 납품을 미끼로 중소기업과 제품 개발 계약을 맺은 뒤 취소해 해당 기업이 부도 위기에 처했다. KT네트웍스는 KT가 지분 100%를 갖고 있는 자회사다.
무선 영상전화기 제조업체 엔디에스는 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KT네트웍스를 상대로 “개발비용 22억8000만원을 배상하라”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고 28일 밝혔다. 이 업체는 지난달 KT네트웍스를 공정거래위원회에 불공정거래·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등 혐의로 고발했다.
엔디에스는 와이파이망을 이용한 무선영상전화기를 국내 최초로 개발한 중소기업이다. 2009년 7월 KT네트웍스는 엔디에스에 와이파이망을 이용한 무선 영상전화기 ‘엠폰’ 개발을 제안했다. 당시는 KT네트웍스가 신성장동력으로 무선랜을 이용한 홈 네트워크 기술에 주목할 때다. 엔디에스가 개발한 엠폰은 인터넷망이 연결되면 외부에서도 집안의 가스·전기·조명시설을 조작하고, 걸려오는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제품이다.
엔디에스 관계자는 “KT네트웍스가 개발에 성공하면 수십만대를 KT에 납품할 수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실제 KT네트웍스는 당시 연 25만대가량의 엠폰을 판매할 계획을 세운 것으로 확인됐다. 두 회사가 맺은 계약서에 따르면 향후 생산되는 단말기의 국내·외 판매는 KT네트웍스가 독점하고, 엔디에스는 다른 업체에 이 제품을 판매할 수 없게 돼 있다. SK텔레콤이나 LG유플러스 같은 다른 이동통신사와는 거래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엔디에스 관계자는 “계약을 맺을 때부터 KT가 거래를 중단하면 위험부담을 고스란히 우리 회사가 짊어져야 하는 불공정한 거래였다”고 말했다. 엔디에스가 자체 개발한 제품이지만 기술 특허는 두 회사가 공동으로 출원했다. 계약이 끝나면 엔디에스뿐 아니라 KT네트웍스도 이 기술 특허를 활용할 수 있다는 조항도 넣었다. 엔디에스 관계자는 “이런 내용을 계약서에 써야 한다며 당시 KT네트웍스가 우리를 강하게 압박했다”고 주장했다.
엔디에스는 이후 22억여원을 투자해 제품을 개발하고 지난해 말에는 KT의 납품 인증까지 통과했다. 그러나 KT네트웍스는 엠폰을 개발한 뒤 적극적인 영업활동을 하지 않았다. 계약서에는 KT네트웍스와 엔디에스가 각각 영업과 제품 개발을 책임지도록 돼 있다.
개발비 부담으로 회사 운영이 어려워진 엔디에스는 올 6월 사업진행 상황을 KT네트웍스에 물었다. KT네트웍스는 엔디에스에 “계약을 해지하자”는 공문을 보내왔다.
KT네트웍스는 공문에서 “시장이 없어 영업에 실패했다”면서 “향후 영업활동을 할 계획이 없기 때문에 계약 연장을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엔디에스는 이후 “개발비만이라도 보상받게 해달라”면서 4차례에 걸쳐 KT 회장 면담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KT와의 계약이 깨졌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회사 운영은 극도로 어려워졌고 30명에 이르던 직원 수는 12명으로 줄었다. 30억원대 매출은 10억원대로 주저앉았다.
엔디에스 관계자는 “KT네트웍스가 영업을 책임졌음에도 KT에 적극적으로 영업을 하지 않았다”면서 “실제 영업을 하려면 시연과정이 필요하지만 이에 필요한 기술지원을 우리 회사에 전혀 요청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KT네트웍스 관계자는 “엔디에스에 수십만 대의 제품 납품을 제안한 적이 없으며 일부 건설업체에 엠폰 5200여대를 공급하는 계약을 맺는 등 정상적인 영업행위를 했다”고 말했다. 또 “시장이 확대될 것이란 공감대를 갖고 있었으나 시장이 열리지 않아 계약을 취소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KT네트웍스가 주장한 엠폰 5200여대 공급 계약은 해당 건설업체와 엔디에스가 맺은 계약을 KT네트웍스가 맺은 것처럼 꾸민 것으로 확인됐다.
엔디에스 관계자는 “KT가 지난해 중소기업의 자원이 KT로 인해 낭비되지 않도록 하고, 기술개발 아이디어를 가로채지 않겠다고 했는데 이 모든 게 거짓말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백인성 기자 fxma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