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유선통신시장 경쟁 활성화와 소비자 선택권 확대를 위해 필수설비 공동활용 제도를 도입했지만, 실제 시장에서는 KT의 필수설비를 경쟁회사들이 활용하지 못하고 있어 유선통신 시장의 경쟁이 고착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27일 방송통신위원회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필수설비 제공 의무사업자인 KT는 지난 2009년 KTF를 합병하면서 합병인가 조건으로 필수설비 공동활용 활성화 의무가 부과됐다. 그러나 KT가 2010년과 2011년 통신용 관로 3만600여개를 LG U+, SK브로드밴드, 케이블TV 방송사업자(SO)등 경쟁사업자에게 제공하기로 약속했지만 실제 공동활용이 이뤄진 것은 고작 325개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에서는 유선통신업체들이 KT에 필수설비를 활용하겠다고 신청했으나 이의 승인율은 통신용 관로와 전주를 모두 합쳐도 25%를 밑돌아 필수설비 공동활용 제도가 제대로 운용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MVNO-필수설비..경쟁·투자 활성화…’양날개’
방통위는 통신시장 경쟁 활성화를 중요 정책목표로 내세워 이동통신 분야는 재판매사업(MVNO)제도를 활성화하고 유선통신 분야는 필수설비 공동활용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MVNO는 내년부터 사업자들의 시장경쟁이 본격화돼 이동통신 경쟁활성화 방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반면 유선통신시장의 필수설비 공동활용 제도는 10년이 지나도록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필수설비는 유선통신망을 깔기 위한 통신용 관로나 전주를 말한다. 유선통신망을 구축하려면 땅을 파고 관로를 묻어 통신망이 지나갈 수 있는 길을 만들거나 전주에 통신망을 지나가도록 해야하는데 일반적으로 땅파기 공사는 3년내 동일구간에 공사가 금지돼 있다. 또 지방자치단체들이 전주 추가설치를 꺼려하기 때문에 KT가 전국에 구축해 놓은 통신용 관로나 전주를 이용하지 않으면 경쟁회사들의 필수설비 사용은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다.
경쟁회사들의 설비투자가 안되면 소비자들은 필수설비를 가진 회사의 전화나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할 수 밖에 없어 선택권이 제한된다. 이는 결국 유선통신 시장의 경쟁이 활성화되지 못하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
■해외선 정부가 필수설비 공동활용 제도화
이 때문에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나 유럽 각국은 선발 유선통신사업자의 필수설비를 경쟁회사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고 있다.
유럽위원회는 필수설비 의무제공사업자와 경쟁 사업자가 필수설비에 동등하게 접속할 수 있는 동등성원칙(Principle of equivalence)을 명문화해 놨다. 영국 정부는 국영통신회사 BT를 민영화하면서 필수설비 공동활용을 위해 조직분리를 명령할 계획이었으나, BT가 스스로 필수설비를 경쟁회사에 임대하는 오픈리치라는 자회사를 설립해 필수설비 임대 사업으로 막대한 수익을 얻는 것은 물론 통신시장의 경쟁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방통위, 제도개선..KT 강력반발
정부의 정책의지가 시장에서 실현되지 않자 방통위는 필수설비 공동활용 제도를 강화할 계획이다. KT가 통신용 관로를 임대할 여유공간이 부족한 지역에서는 광케이블도 필수설비로 인정해 경쟁회사에 빌려주도록 하고 통신용 관로의 여유공간을 줄여 경쟁회사들이 통신망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같은 방통위 정책에 대해 KT는 강력반발하고 있다. 지난 2009년 KT 이석채 회장이 필수설비 공동활용 제도에 대해 “KT의 사유재산을 왜 정부가 공동활용하라고 강제하느냐?”며 반발했던 것이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한 전문가는 “방통위가 필수설비 제공을 KT·KTF 합병인가 조건으로 부과할 만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KT의 필수설비가 공동활용되지 못하면 유선통신시장에 투자경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며 “유선통신 투자경쟁을 촉발하는 한편 KT에도 필수설비 제공을 통한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을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한 것인데 KT가 정책의 본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cafe9@fnnews.com 이구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