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구매하는 고객께 고급 자전거 드려요.”

25일 서울시내 중심 대학가에 위치한 KT 공식대리점. ‘믿고 살 수 있는 페어 프라이스, KT가 앞장서겠습니다’라는 현수막 옆에 15만원 상당의 고급 접이식 자전거를 준다는 판촉물이 버젓이 걸려있다. 대리점 간판 옆에 아예 매달아놓은 자전거가 행인들의 눈을 잡아끈다.

KT가 휴대폰 판매가격에 대한 고객 불신을 해소하겠다며 도입한 ‘페어 프라이스(공정가격표시)’시행 석 달째. 동일 제품을 어느 매장에서나 같은 가격에 팔아 고객들이 발 품 팔지 않아도 안심하고 휴대폰을 구매할 수 있게 해 시장 질서를 바로 잡겠다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이석채 회장이 KT가 선도적으로 산업구조를 혁신하겠다며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지만 실제 영업현장에서는 여러 부작용을 낳고 있다.

대리점들이 KT 본사의 정책을 피해 가입비, 채권료, 위약금 대납은 물론 자전거, 백화점상품권 등 현금성 경품까지 지급하는 변칙영업이 기승을 부리는 것. 정찰가격 이하로는 제품가격을 많이 낮추기 어렵기 때문에 경품을 통해 사실상 할인혜택을 주는 셈이다.

자전거를 가입 상품으로 내 건 KT 대리점 직원은 “300대 한정으로 이번 달만 하는 사은행사이기 때문에 자전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3일 이내 집으로 직접 택배 배송해준다”며 고객을 잡아끌었다.

다른 KT 대리점의 한 직원은 “본사 정책이라 ‘페어프라이스’를 전혀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에 경품이라도 줘야 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다”며 “다른 통신사들이나 온라인 판매처들이 모두 정찰제를 하지 않는 상황에서 가만히 앉아 고객을 뺏길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KT의 공식대리점은 전국 2800개에 달한다. KT 본사가 직접 통제할 수 있는 직영점은 140개에 불과하다. 직영점이 아무리 페어프라이스를 제대로 지킨다고 해도 대리점들의 동참 없이는 제도가 정착되기 어렵다.

온라인매장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KT 오프라인 매장들 보다 더 저렴하게 살 수 있다.

동일한 기종이 단말기별로 최대 50만원 차이가 나기도 한다. 10월 현재 ‘갤럭시S2’의 단말기 가격(할부원금)은 페어프라이스 기준으로 84만2000원. 한 온라인 판매처에서는 57만원에 판매돼 27만원의 가격 차이를 보였다.

‘베가X’의 경우는 페어프라이스 기준으로 60만2000원이지만 한 온라인 판매처에서는 5만원으로 가격차이가 55만원이 넘는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휴대폰을 산 소비자라면 수십만원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셈이다.

최근 KT 직영점에서 휴대폰을 구입한 주부 김모씨(54세)는 “직원이 매장마다 이제는 가격이 다 같아졌다고 해서 다른 데 알아보지도 않고 바로 그 자리에서 구매했다”며 “온라인이 그렇게까지 쌀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고 푸념했다.

업계에서는 지금과 같은 유통구조에서는 페어프라이스가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다른 이통사들이 참여하지 않는데다 가격 정찰제를 판매점들에 강제할 수단이 전혀 없다”며 “오히려 소비자만 더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KT는 문제점을 인식하면서도 시간을 갖고 제도가 안착되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KT 관계자는 “본사 영향력이 미치는 직영점은 표준가격을 잘 지키고 있고 대리점에 대해서도 고객가입시 판매가격 데이터가 전산으로 기록되기 때문에 모니터링을 철저히 하고 있다”며 “하지만 현장에서 가격을 낮게 팔거나 경품을 주는 것은 고객 편의를 위한 것인 만큼 본사에서 강제할 수단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