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취재후] 이사회 의결로 ‘순실 게이트’ 방지? 따져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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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10억 원 이상의 기부금·출연금 등을 낼 때는 이사회 의결을 거치기로 했습니다. 사업보고서를 통해 공시하겠다고도 했습니다. SK텔레콤도 똑같은 결정을 했습니다. 다른 대기업들도 뒤를 따를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최순실 게이트’가 있습니다. 미르·K스포츠 재단에 기업 수뇌부가 마음대로 거액의 회삿돈을 출연한 것으로 드러나 뇌물 혐의로 수사를 받는 등 홍역을 치르고 있는 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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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외이사들이 포함된 이사회가 감시하도록 ‘통제 시스템’을 만들어놓으면 정부가 부당한 요구를 해와도 이를 막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겁니다. 정말 그럴까요? 이사회가 결정하고 이를 공개하도록 해놓으면 ‘제2의 최순실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까요?

‘이사회 의결’ 거친 포스코·KT…왜 못 막았나?

K스포츠 재단에 30억 원, 미르 재단에 19억 원을 출연한 주식회사 포스코의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는 상장기업들의 분기보고서와 사업보고서가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공개돼있습니다.

포스코의 2016년 분기보고서를 보면, ‘재단법인 케이스포츠 기금 출연’ 건이 2016년 1월 28일 이사회에 상정돼 이사 전원의 찬성으로 가결됐다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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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스포츠 재단 출연’ 이사회 승인 (포스코 분기보고서)
미르 재단 출연 건도 마찬가지입니다. 2015년 11월 6일에 이사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고, 이는 2016년 3월 30일자 사업보고서에 실려 공개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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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르 재단 출연’ 이사회 승인 (포스코 사업보고서)
삼성전자와 SK텔레콤 등이 ‘제2의 최순실 게이트’를 막겠다며 제시한 이사회 의결과 공시라는 ‘통제 시스템’을 포스코는 진작부터 가동해왔던 겁니다.

포스코뿐만이 아닙니다. KT 역시 정관과 이사회 규정에 ’10억 원 이상 출연ㆍ기부 시 이사회 의결’을 명시해두고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미르 재단에 11억 원을 출연하면서 이사회의 검토와 승인을 받았습니다.

특검이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에 대한 뇌물로 보고 수사 중인 미르와 K스포츠 재단 출연금(774억 원)을 낸 기업은 삼성·현대차·SK 등 53개에 이릅니다. 이들 가운데 포스코와 KT는 이사회 의결과 공시라는 ‘통제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었지만, ‘통제 시스템’을 가동한 결과는 다른 기업들과 전혀 다르지 않았던 겁니다.

사외이사들 모두 찬성…‘통제 시스템’ 무용지물

그 이유는 이들 기업의 사외이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당시 포스코 사외이사는 7명.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전직 경제 관료와 경영학 교수, 회계사 등으로 짜여졌습니다. 그런데, 2~3일 만에 설립되고 운영 계획도 어설펐던 이들 재단에 50억 원 가까이를 내놓는 안건에 대해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포스코의 한 사외이사는 “출연 과정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미 결정해서 도와달라고 하는 데 반대하기는 어려운 분위기였다”고 털어놨습니다.

공기업이었다가 민영화된 포스코와 KT의 경우 경영진은 물론이고 사외이사조차 사실상 ‘오너’ 행세를 하는 정권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았기에 통제 시스템이 무력화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삼성전자나 SK텔레콤 같은 ‘총수’가 있는 민간기업은 다를까요? 사외이사가 총수 일가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건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정도입니다. 재벌그룹 상장기업들의 이사회 안건 가운데 사외이사의 반대 등으로 원안대로 통과되지 않은 안건은 0.2%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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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적 사외이사 없으면 ‘면피용 시스템’…“집중투표제 도입해야”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정재규 선임연구위원은 이사회 의결을 거치는 건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소액주주나 기관투자자 등 외부 주주들의 추천을 통해 선임된 사외이사가 이사회에 존재해야 제2의 최순실 사태를 막을 수 있다는 겁니다.

NO‘라고 말할 수 있는 사외이사가 없는 상태로 ‘이사회 의결’이라는 형식만 만들어놓을 경우 오히려 ‘면피용’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경제개혁연대 김상조 소장(한성대 교수)은 이사회를 통한 통제 시스템이 내실을 갖추지 못하면 총수나 정권이라는 실질적 의사 결정자의 책임을 면하게 해주는 구실로 이용될 수 있다고 경계합니다. 재계가 이사회를 제대로 운영할 의지가 있다면 상법 개정안의 집중투표제를 수용해 독립된 사외이사가 선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삼성전자와 SK텔레콤 이사회는 포스코와 KT의 전철을 밟지 않고 제2의 최순실 게이트를 막아낼 수 있을까요?

임장원기자 (jwli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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