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중앙일보] [서소문 포럼] 전기료·통신비 비싼 이유
이명박 대통령은 2007년 대선 공약으로 ‘통신비 20% 인하’를 내걸었다. 정부 조직을 개편하면서 정통부를 폐지했다. 국민은 큰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통신비 인하는 쉽지 않았다. 2010년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통신비는 더 오를 수밖에 없었다. 정부는 통신 환경이 바뀐 데다 휴대전화를 많이 쓰기 때문에 통신비가 올랐다고 설명했다. 국민은 다시 정부와 업체의 선처만 바라는 신세가 됐다.
박근혜 대통령도 통신비 인하를 대선 공약으로 채택했다. 보조금을 뿌리 뽑기 위해 새누리당 주도로 단통법까지 만들었다. 통신비가 속 시원히 내렸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요금제는 갈수록 복잡해졌다. 새 요금제가 나올 때마다 업체들은 요란하게 선전했다. 하지만 요금을 올린 건지 내린 건지 헷갈렸다. 변하지 않는 건 휴대전화 요금으로 매달 10만원 가깝게 낸다는 사실이다.
올여름 공분을 샀던 전기요금은 통신비와 여러모로 흡사하다. 8월 초만 해도 정부는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의 문제점을 못 들은 척 뭉갰다. 전기요금을 손대는 번거로움을 피하고 싶었을 게다. 누진제 논란을 연례행사쯤으로 안이하게 여긴 측면도 있다. 정부와 한국전력 입장에선 올해 운이 나빴다.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졌다. 며칠만 버티면 선선해지고, 누진제 논란도 잠잠해질 것이라는 예상이 빗나갔다.
원성이 계속되자 산업통상자원부는 7~9월 한시 인하 카드를 들고 나왔다. 지난해도 써먹은 방법이다. 정부가 생색을 냈지만, 가구당 월평균 9000원 남짓 깎아주는 데 불과했다. 8월 전기사용량이 고지서로 나오는 이달 하순 한바탕 난리가 날 것이다. 정부는 이때 할 얘기를 준비해뒀다. “당정 전기요금 태스크포스(TF)가 개선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며칠 시끄럽다가 누진제는 선선한 바람과 함께 다시 수면 아래로 들어갈 것이다.
그러면 모두 해결된 건가. 아닌 것 같다. TF만 믿고 있기에는 조짐이 좋지 않다. TF는 다양한 요금제를 만들어 소비자가 선택하도록 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선택형 요금제라고? 휴대전화 요금에도 적용한 방법이다. 알 듯 모를 듯 복잡한 요금제를 만들었는데, 끝내 통신비는 떨어지지 않았다.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혀주는 방향으로 선택형 요금제를 만들면 득이지만, 현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교묘하게 만들면 독이 될 수 있다.
TF는 누진제 개편도 논의한다. 주형환 산업부 장관은 지난달 국회 답변에서 “한전이 누진제를 완화할 여력이 있는지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택용 전기는 원가 이하로 판매되고 있어 한전 입장에선 손실이 생긴다”고 덧붙였다. 누진제 완화를 검토는 하겠으나 썩 내키지 않는다는 얘기다. 산업부 장관을 지낸 윤상직 새누리당 의원은 “전기 포퓰리즘의 영향으로 요금이 원가 밑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원사격을 했다. 누진제 완화 주장을 포퓰리즘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산업부가 국민 편인지, 한전 편인지 헷갈린다.
전기는 한전의 독점, 휴대전화는 SK·KT· LG의 과점 체제다. 업체가 요금의 얼개를 짠 뒤 정부가 인가(또는 사실상 인가)하는 구조다.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요금이 결정되지 않는다. 정부와 업체가 칼집을 잡고, 국민은 칼끝을 잡은 모양새다. 국민 입장에선 선처를 바랄 뿐이다. 그럴수록 전기료에 관한 한 한가지는 잊지 말아야겠다.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배율이 11.3배나 되는 나라는 한국뿐이라는 사실을. 이번에 못 고치면 점점 더 고치기 어렵다는 사실을.
고 현 곤
신문제작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