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규 회장이 이끌고 있는 국내 최대 통신기업 KT가 지난 3월 공익제보자 이해관 전 KT 새노조위원장에게 내렸던 감봉 조치를 지난달 30일 자로 슬그머니 취소했다. 이로써 KT는 공익제보자와의 4년여 긴 싸움에서 ‘굴욕의 마침표’를 찍게 됐다.
하지만 내년 초 3년의 임기가 끝나는 황창규 회장에게 ‘공익제보자 징계’ 이슈는 연임에 큰 짐이 될 수밖에 없어 이처럼 꼬리를 내린 것으로 업계 일각에서는 해석하고 있다.
게다가 KT는 이번 감봉 조치 취소 이유에 대해 적극적인 사과보다는 “대승적 차원”이라는 궁색한 해명까지 내놓아 공분을 살 위기에 처했다.
▶KT, 4년간 연이어 징계하더니 결국 이해관 전 위원장에게 백기?
이해관 전 위원장은 지난 2012년 3월 KT가 제주 7대 자연경관 선정 투표와 관련해 전화 및 문자서비스를 제공하며 부당이익을 취하자 이를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한 공익제보자다. 당시 KT는 투표기간인 2010년 12월부터 2011년 11월까지 국내전화를 국제전화로 홍보하며 요금고지서 착신국가를 영국으로 명기하고, 문자 투표 역시 국제문자투표로 진행하며 건당 50원의 부당이익을 취한바 있다.
이 전 위원장의 공익제보에 KT는 즉시 징계절차에 돌입했다. 우선 2012년 3월 허위사실유포 등을 이유로 정직 2개월의 중징계 처분을 내렸다. 이어 1차 불이익 조치로 그해 5월, 이 전 위원장의 거주지에서 90㎞ 이상 떨어진 경기 가평지사로 원거리 전보 명령을 내려졌다. 이에 이 전 위원장은 참여연대와 함께 권익위에 전보조치에 대한 보호조치를 신청했고, 권익위로부터 1차 보호조치를 이끌어냈다.
그해 12월에는 이 전 위원장이 장시간 출퇴근으로 허리에 통증이 생겨 병가를 신청했는데도 KT는 이를 거부한 뒤 무단결근을 이유로 이씨를 해임했다. 하지만 권익위는 다시 한 번 이 전 위원장의 손을 들어줬다. 해임처분에 대해 2차 보호조치결정을 내린데 이어 징계 인사권자에 대해 형사고발을 결정했다. KT는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대법원 역시 KT가 이 전 위원장에게 보복성 조치를 가한 것으로 보고 보호조치 결정을 확정했다.
결국 KT는 지난 2월 이 전 위원장을 복직시키는 굴욕을 겪었지만 징계는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KT는 이 전 위원장이 복직되고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지난 3월, 4년 전 해임처분 때 문제 삼았던 무단결근과 조퇴에 대한 징계가 불가피하다며 다시 감봉 1개월의 징계 조치를 내렸다. 이에 지난 8월 9일 권익위는 “감봉 1개월의 재징계 조치는 공익신고로 인한 불이익에 해당하는 만큼 징계 사유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3차 보호조치 결정을 내렸다. 이 전 위원장에게 계속된 징계를 하며 ‘치졸한’ 고집을 보였던 KT는 지난달 30일 권익위의 결정을 수용해 슬그머니 감봉조치를 취소하며 ‘백기’를 들었다.
▶KT, 4년 만에 ‘대승적 차원’으로 돌변… 황창규 회장 연임 때문?
이해관 전 위원장과 함께 4년간 KT의 징계에 맞서왔던 참여연대 측은 이번 KT의 감봉조치 취소에 대해 “공익제보자를 탄압하는 대기업의 횡포는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다는 교훈을 남겼다”며 “공익제보자가 조직의 집요한 탄압에 맞서 이겨낸 성과이기도 하다”고 평가했다. 이어 “오랜 기간 징계와 소송을 거듭하며 이해관씨에게 심각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준만큼 KT의 진정성 있는 사과도 필요하다”며 “무엇보다 이번을 계기로 더 이상 공익신고를 빌미로 공익제보자를 괴롭히거나 조직에서 퇴출하려는 시도가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KT의 입장은 진정성 있는 사과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KT는 ‘이번 조치로 이해관씨에 대한 징계가 모두 마무리 되었다고 보아도 되느냐’는 질문에 “추가 조치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감봉조치를 취소한 것은 결국 KT의 이해관씨에 대한 징계가 잘못된 것이었음을 인정하는 것인가’라는 물음에는 “법원에서도 징계사유를 인정했지만 대승적 차원에서 권익위 결정을 존중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KT가 법원에서도 이 전 위원장의 무단결근과 무단조퇴에 대해 징계사유를 인정했다는 법원 판결문은 KT가 입맛에 맞는 부분만 발췌해 왜곡했던 것이었다. 당시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무단결근과 무단조퇴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징계사유는 인정된다. 그러나 사정들을 종합하면, 해임은 징계양정(징계의 기준) 권리를 일탈하거나 남용해 가해진 보복성 조치라고 봄이 타당하다”며 “징계사유가 인정되는 것만으로는 이 전 위원장의 공익제보와 KT의 해임조치에 인과관계가 없다고 보기엔 어렵다”고 밝힌 바 있다.
무엇보다 지난 4년간 치졸할 정도로 계속되어온 징계가 어떻게 하루아침에 대승적 차원에서 받아들여 질 수 있는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 전 위원장에 대한 징계는 KT의 체질 개선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황창규 회장의 재임 기간에도 계속되어 왔다는 점이다.
황창규 회장은 올해가 임기 3년차 마지막 해로 재신임 여부를 앞두고 있다. 그동안 명예퇴직 단행으로 인한 조직 슬림화, 신사업 진출, 기가 인터넷 가입자 유치 등 대외적으로 보이는 성과는 황 회장의 연임에 긍정적 요소로 꼽힌다. 하지만 직원들에게 ‘1등 DNA를 발휘하자’고 강조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공익제보 직원에 대한 ‘보복 DNA’를 떨쳐내지 못한 점이 연임으로 가는 길에 커다란 부담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이유로 ‘이해관 리스크’ 제거 차원에서 최근 감봉 조치를 취소한 것으로 업계 일각에서는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KT가 이해관 전 위원장의 징계를 4년간 계속해 오다가 갑자기 모든 징계를 정리한 것은 황창규 회장의 연임을 앞두고 부담을 떨쳐내기 위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있다”며 “그렇다고 지난 일들이 모두 덮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정혁 기자 jjangg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