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바보’ 아빠가 자동차에 불피우고 자살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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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바보’ 아빠가 자동차에 불피우고 자살한 이유는?

[자살공화국 대한민국] 개인에게만 책임 전가하는 ‘더러운 사회’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가족이 또 다시 숨을 거둔 날. 장례식장은 한산했다. 상복을 입은 유족 대여섯 명만이 말없이 자리를 지킬 뿐, 그 흔한 화환도 눈에 띄지 않았다. 간혹 조문을 오는 사람들이 입은 조끼에는 이제는 빛이 바래 희미해진 ‘같이 살자’라는 글씨가 또 다른 죽음 앞에 무안한 듯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관련기사 : ☞ 한진 타결된 날 쌍차에선 19번째 죽음)

“쌍용차에서 사람이 죽을 때마다 조문 오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 줄 아세요? 장례 때마다 텅텅 빕니다. 그것도 같은 부서에서 일했던 현직 동료는 안 와요. 그나마 해고자, 무급자, 퇴직자나 오지.”

쌍용자동차의 징계해고자인 신재호(가명ㆍ35) 씨는 “한곳에서 15~16년 동안 직장 생활하다가 40대 초반에 해고되면 회사 동료나 인맥은 다 쌍용차 사람들인데 (장례식장에) 얼마나 오겠느냐”고 반문했다. 해고는 인간관계마저 단절시켰다.

“일용직 전전하다 우울증…해고는 진짜 살인”

2009년 쌍용차 사태 당시 희망퇴직자와 정리해고자는 각각 1670명, 974명이었다. 쌍용차는 같은 해 8월 6일 정리해고자 974명 가운데 48%에 해당하는 468명을 1년 무급휴직 후 복직시키기로 했지만 약속은 2년이 넘어도 지켜지지 않았다.

그 사이 공장 밖으로 쫓겨난 사람들은 생활고와 우울증 등으로 하나둘 목숨을 잃었다. 죽음은 ‘산 자’와 ‘죽은 자’를 가리지 않았다. 2009년 이후로 19번 째 죽음을 맞은 쌍용차 노동자들은 “죽음의 향내가 지겹다”고 말했다.

▲2월 28일 쌍용자동차 무급휴직자인 임무창 씨의 운구가 장례식장에서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정문으로 ‘출근’했다. ⓒ프레시안(손문상)

“쌍용차는 해고사업장의 표본이에요. 쌍용차 사태를 통해 우리 해고자들이 지금 이렇게 살아간다, 해고가 진짜 살인이라는 것을 보여주죠. 엊그제 18번째 목매달아 돌아가신 분의 상을 치른 지 3일인데, 또 죽었으니 안타깝죠.”

쌍용차 희망퇴직자인 남편은 일용직을 전전하다가 한 달에 한두 번 가족을 만나왔었다. 아버지가 지방에서 일용직을 하는 동안 홀로 남겨진 아이들은 이틀 동안 집에서 어머니의 주검을 지켜왔다. 병원 측은 희망퇴직자 아내의 기도가 막혀 숨진 것으로 추정했다.

신 씨는 “사회보장제도도 없다 보니 공장 밖으로 쫓겨난 사람 모두가 생활고에 시달린다”고 했다. 30대 후반~40대인 해고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일용직밖에 없었다. 신 씨의 명함 뒤에는 ‘대리운전 광고’가 박혀 있다. 쌍용차지부의 재정사업의 일환이지만, 그곳에서 새벽에 대리운전을 하는 조합원도 꽤 된다고 했다. “대학 졸업생도 정규직되기 힘든 세상”이었다.

“14명 째 죽었을 때 저는 이건 죽음의 전주곡이라고 했어요.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게 무엇일 것 같으세요? 지금 골방에서 은둔 생활하고 혼자 사는 사람, 정신병원 오가는 사람도 있어요. 더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좋아질 건 없습니다.”

실제로 노동조합 사무실에는 지금도 가끔 죽고 싶다는 전화가 온다. 대개는 술에 취한 목소리였다. “형, 나 더는 못살겠어. 진짜 죽고 싶어.” 그럴 때마다 신 씨가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같이 술을 마시면서 ‘죽지 말자’고 말하는 것이다. ‘죽고 싶다는 동료’를 달래는 신 씨 또한 해고자다.

그는 “지금도 밖에 일절 안 나가서 형수님이 술과 담배를 사다주는 경우가 있다”며 “이렇게 사는 게 창피하니까 은둔생활을 하지만, 그런 사람은 그러다 마음이 곪는다. 마음이 곪은 사람들은 더 위험하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칼로 손목을 그었다가 병원에 가는 사람도 있었다.

ⓒ금속노조

정리해고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죽음’

쌍용자동차처럼 극한의 투쟁을 한 사업장뿐만이 아니다. 정리해고의 태풍이 지나간 사업장에서 죽음은 일상다반사처럼 일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이 KT다. (관련기사 : ☞ “olleh kt, 사랑합니다 고객님”…웃음 뒤에 감춰진 눈물)

“충격을 받을까봐 아직 남편이 자살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어요. 언젠간 말해야 하겠지만, 쉽지가 않습니다. 저도 아직 남편이 없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거든요.”

지난 10월 3일, 자신의 차에서 죽음을 택한 고(故) 전해남 희망연대노조 KTCS 전 지부장 유가족은 고인이 자살을 했다는 사실을 아직 잘 모르고 있었다. 노모는 아직도 자식이 해외로 연수를 간 줄 알고 언제 돌아오는지 묻곤 한다.

그나마 중학교 3학년인 막내딸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줄은 알고 있다. 하지만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줄 안단다. 그런 가족을 보면서 홀로 남겨진 아내 박수진(가명·50) 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눈물을 흘린다.

고 전해남 전 지부장은 생전 딸 밖에 모르는 ‘딸 바보’ 아빠였다. 대학교 3학년, 고3, 중3 등 딸만 셋을 둔 고인은 평소 딸을 위해서는 뭐든지 했었다. 입시학원을 다니는 둘째 딸을 위해서 매일 밤, 학원 끝나는 시간에 맞춰 딸을 데리러 가곤 했다. 둘째 딸이 특차로 공예학과에 들어간 걸 누구보다 기뻐했다.

오형제 중 장남인 고인은 퇴근 후에는 어머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집안 대소사는 늘 챙겼다. 아이들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때는 늘 케이크와 꽃을 들고 퇴근하던 고인이었다. 그렇다보니 고인이 자살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는 유가족이다.

고인이 KT에 입사한 건 1985년이었다. 전선 설치 등 현장을 다니며 일을 했다. 회사에서 인정도 받아 지부장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KT가 민영화를 한 뒤 상황은 바뀌었다.

고인은 2008년, KT가 새로 만든 협력사로 쫓겨나다시피 가게 됐다. 희망퇴직과 협력사 입사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데 버틸 재간이 없었다. 당시 KT는 민원처리업무(VOC)를 외주화하며 정규직 550여 명을 협력사로 내보냈다.

고인이 한 일은 민원처리업무. 전화번호 ‘100’번으로 걸려온 전화에서 요금 이의 등 민원이 발생하면 두 번째로 고객과 상담하는 역할을 맡는다. 조건은 3년간 고용보장, 이전 급여 70% 지급, 인센티브 지급 등이었다.

말이 협력사였지, 알고 보면 고인 등 550여 명을 해고하기 위한 꼼수에 불과했다. 고인이 입사한 협력사는 2009년, 한국인포서비스(KOIS)·한국인포데이타(KOID)와 각각 통합돼 KTis, KTcs로 새로 출범하며 KT 자회사로 편입됐다.

월급 30% 깎이고 거기서 또 50% 깎이고

그나마 아이들 뒷바라지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일을 계속했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않았다. 지난 6월, KT 본사는 고인이 맡은 민원처리업무를 KTCS에서 다시 회수한다는 이유로 사직을 강요했다.

▲ 고 전해남 지부장의 부인. ⓒ프레시안(허환주)

고인은 사직을 거부하고 7월, 희망연대노조 KTS 지부를 만들었다. 회사는 결국 고인을 포함한 사직거부 대상자를 대전으로 발령, 업무전환 교육을 실시했다. 고인은 이곳에서 100콜센터 상담역을 교육받았다.

그리곤 10월 4일부터 100콜 상담원으로 일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상담원 일이 힘들다는 건 말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힘든 건 월급이 50%나 깎였다는 점이었다. 한 달에 받는 돈은 150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회사는 고인에게 100콜 상담원으로 일하지 않을 거면 나가라고 종용했다.

결국, 고인은 출근하는 바로 전날인 3일, 저녁 11시께, 공주-부여 방면 도로변 전소된 차량 안에서 발견됐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 박 씨는 “남편은 워낙 말이 없는 편”이라며 “가끔 하는 회사 이야기를 통해 많이 힘들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힘들어 하는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KT는 2002년 민영화 이후 일명 ‘C-Player’이라는 인력퇴출프로그램을 통해 임금 삭감, 강제퇴출, 원거리 배치, 업무 전환 등의 인력퇴출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이러한 결과로 2010년 이후 지금까지 20여 명의 노동자가 자살, 돌연사 등으로 사망했다.

사회 복지망도 없는 상황에서 회사 복지에서 쫓겨나면?

2008년 우리나라에서 자살로 사망한 사람은 1만2858명이다. 하루 평균 35명, 40분마다 1명꼴로 자살을 선택한다. 국내에선 암 다음으로 사망률이 가장 높다. 한국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헝가리 다음으로 2위에 올라 있다.

하지만 정리해고를 거친 사업장 노동자의 경우, 그 비율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보통 자살률은 10만 명당 1명~2명꼴이지만 쌍용자동차의 경우, 200명에 1명꼴이다. 최소 250배가 많은 것. 쌍용자동차가 특수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비상식적으로 높은 수치다.

ⓒKT노동인권센터

평택시와 평택참여자치시민연대, 평택대학교가 지난 6월 1일부터 7월 13일까지 쌍용차 정리해고자 113명, 희망퇴직자 206명, 무급휴직자 132명, 징계정직자 3명 등 총457명을 실태 조사한 결과, 52.5%가 자살 등 극단적 선택의 충동을 느낀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지난 10월 금속노조가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25일간 파업을 벌이다 해고된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71명을 상대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 92.7%는 ‘정신 건강이 악화됐다’고 응답했다.

구체적인 변화로는 ‘하루에도 수십 번 자살 충동을 느낀다’, ‘아파트 베란다에 서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답했으며 가정파탄, 이혼 직전, 별거 중, 아내 우울증 심각 등 심각한 가정불화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계도 심각한 문제다. 이들 중 44.4%는 생계 어려움을 가장 고통스러운 일로 꼽았고 앞날에 대한 걱정(22.6%), 가정불화(18%) 등으로 응답했다.

노동계와 학계에서는 이러한 원인을 ‘회사 복지’만이 지금 사회 복지 구조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국가가 책임지는 ‘사회 복지’는 상대적으로 허술한데, 이를 뛰어넘거나 보완하는 복지가 개별 회사에게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회사 복지 혜택을 입던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쫓겨나면 눈에 보이는 ‘임금’은 물론 눈에 띄지 않게 주어지던 ‘회사 복지’까지 잃기 때문에 충격이 배가되는 것이다. ‘회사 복지’ 비용을 사회적 합의 또는 압력으로 전체 사회로 돌려 구성원 전체가 득을 보는 ‘사회 복지’를 확충한다면 해고에 따른 충격도 적어지게 된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쌍용자동차 해고자 신재호 씨는 “더 이상 안 죽었으면, 한 명이라도 죽음을 막았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말했다. 그는 “경영이 잘못되면 경영자에게 책임을 돌려야 하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며 “정부라도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script type=”text/javascript”> document.onload = initFont(); </script>

/허환주 기자,김윤나영 기자 메일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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