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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새노조 10 년 평가
2022.4
1
내용
1.
……………………………………………………………………………………………………………………………………………………………… 2
1-1.
,
………………………………………………………………. 2
1-2.
………………………………………………. 3
1-3. KT
………………………………………………………………. 8
1-4.
KT,
,
CEO
…………………………………………………………. 12
2. KT
………………………………………………………………………………………………………….. 15
3. KT
…………………………………………………………………………………………………………………………………. 19
3-1.
(
,
) ……………………………………………………………… 19
3-2
…………………………………………………………………………………………………………………… 21
3-3
, 7
………………………………………………………… 22
3-4
……………………………………………………… 26
3-5.
KT
…………………………… 27
3-6.
………………………………………………………………………………… 28
3-7.
KT
………………………………………………………………………… 29
3-8
………………………………………………………………………………………….. 32
4.
(
,
,
) ……………………………………………………… 37
5.
……………………………………………………………………………………………………………………………………. 40
6.
: KT
10
…………………………………………………………………………………………………………………… 41
2
1. 전사
1-1. 대한민국 신자유주의의 출발, 한국통신 분할 민영화
1990년대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되면서 통신 민영화가 추진되었다. 정부지분 100%의 공기업
한국통신은 정부지분 0% 민간회사 KT로 변화하였다. 이 과정은 단순히 기업 간판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근본적 변화와 사회적 변화를 수반하는 것이었다. 소유권의 변동(국영기
업에서 해외자본 우위의 민간기업), 기술 환경의 변화와 새로운 서비스의 출현(전화에서 인터
넷으로, 유선에서 무선으로 그리고 4차 산업혁명)과 이에 따른 망의 개방 및 경쟁 체제의 등
장(한국통신 독점서비스에서 통신 3사 경쟁 체제로의 이행) 등 굵직한 변화가 연이어 발생했
다. 이는 한국통신 경영의 근본적 변화(국가 통신망 관리에서 수익극대화를 위한 주주경영)를
가져왔고 동시에 한국통신 노동자들의 삶 전반을 뿌리째 흔드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동반하
였다.
90년대 초 한국에서 불기 시작한 신자유주의 세계화 바람은 통신의 개방으로부터 시작되었
다. 110년을 국내 모든 통신망과 서비스를 완전 독점하고 있던 국영기업 한국통신을 분할하
여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었다. 이는 곧 한국통신이 독점하던 망과 서비스를
분할하는 것이었고, 결과적으로 한국통신 자회사 중에 가장 알짜배기 회사들을 재벌회사에
넘기는 과정이었다. 1990년대 당시에도 통신의 미래는 이동통신과 데이터통신(인터넷)에 있
다는 것은 3척동자도 알고 있던 상식이었는데 한국통신 자회사 중 이 두 부문의 사업을 담
당하는 자회사를 재벌에게 넘긴 것이었다. 몇 차례의 우여곡절이 있기는 했지만 한국이동통
신㈜는 SK텔레콤으로, 데이콤은 LG그릅에 매각되어 지금의 LGU플러스가 되었다.
자회사를 재벌에 넘겨주어 경쟁체제를 도입한 데 이어 정부는 한국통신 본체의 민영화도 추
진하였다. 정부가 100% 보유하고 있던 한국통신의 주식을 전량 민간에게 매각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10여 년에 걸친 단계적 매각 끝에 2002년 한국통신은 정부지분 0%, 해외지분
49%의 완전 민간회사로 바뀌었고 사명도 KT(케이티)로 바뀌었다.
3
<한국통신 정부 지분 매각 과정>
이렇듯 통신산업의 지형을 근본으로부터 바꾼 경쟁체제 도입과 급진적 소유권 변동의 근저
에는 반도체혁명이라고 일컬어지는 기술 혁신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시기는 스마트폰을 통
한 초연결 사회로 집약되는 일상 생활 전반의 변화를 가능하게 한 기술 혁신의 시기, 요즘
대세가 되어버린 담론으로 얘기하면 3차 산업혁명의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초고속, 대용
량으로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각종 통신기기가 출현하였고 이러한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값싼 광케이블로 구성된 망을 통해 세계 곳곳과 연결해주어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된 것이
다. 사람이 교환원을 통해 고정된 장소로 연결하던 유선전화와는 비교 불가능한 기술이 보편
화된 것이다.
이러한 근본적인 기술의 변화, 기업의 소유 지배구조, 경영환경의 변화는 신자유주의라는 시
대적 조류와 함께 한국통신 노동자들의 삶을 송두리 채 흔들고 있었다. 평생 고용, 연공서열
의 공기업 보상 체제, 대규모 인력 투입에 기초한 노동집약적 산업이었던 통신산업이 초고
속, 대용량 장비 중심의 최첨단 기술 집약적 산업으로 전환되면서, 통신노동자들은 일상화된
대규모 구조조정, 최첨단장비로 절감된 기술인력의 영업 인력으로의 대규모 직무 전환, 실적
우선의 보상 체계, 끊임없는 외주화와 대량의 명예퇴직에 따른 만성적 고용불안에 시달려야
했다.
1-2. 민영화와 구조조정에 맞선 한국통신 노동자들의 저항과 좌절
이러한 통신산업을 둘러싼 근본적인 정세 변화 속에서 한국통신 노동자들은 강력히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대규모 전투적인 투쟁을 동반하는 것이었고 동시에 정부와의 정면 충돌
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1994년 한국통신에 민주노조가 등장했다. 남한 최대규모의 노조가 대
중적인 단체행동에 나서며 정부의 민영화 정책에 맞서자 정부와의 정면대결은 불가피한 것
이 되었다. 1995년 김영삼 정권은 한국통신노조를 “국가전복세력”으로 규정하면서, 노사교섭
도중 노조 전임자 전원에 대해 수배 조치를 취하며 일체의 교섭을 거부하는 대규모 탄압에
나섰다. 한국통신 노동쟁의는 단순한 노사분규가 아니며, “국가 안보 차원에서 노조를 때려잡
연도별 1993 1994 1996 1999 2001 2002. 1 2002. 5
정부지분 매각 10% 10% 8.80% 12.20% 18.90% 12.10% 28.40%
잔여 정부지분 90% 80% 71.20% 59.00% 40.10% 28.40% 0%
외국인 지분 – – – 12.20% 37.00% 49.00% 49.00%
4
겠다”던 김영삼 정부의 무단적인 가공할 노조 탄압은 이러한 한국통신 노동자들의 저항에 대
한 위로부터의 전면 대응이었다.
<김영삼 대통령 한국통신 파업 두고 국가전복 발언>
여기에 더해 IMF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집권한 김대중 정부는 통신공공성의 최후 안전판으로
‘정부가 한국통신의 최대주주로 남는다’던 96년까지의 민영화 방침을 바꿔, 정부지분 전량을
뉴욕증시에 매각하는 급진적 민영화를 밀어 부친다. 이러한 급진적 민영화 정책으로 한국통
신 노동자들에 대한 명예퇴직 등의 구조조정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민영화 이전까지 무료로
제공되던 114 등 비수익분야, 유선전화 AS 등 노동집약적 부분은 외주화를 밀어 부쳤다. 한
국통신 노동자들은 연이은 파업 등으로 정부에 맞섰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자들의 저항은 민
영화라는 커다란 흐름을 막지 못한 채 김대중 정부 하에서도 구속, 해고 등의 집요한 노조
탄압에 시달려야 했다.
5
<한국통신 뉴욕증권거래소 상장>
통신사업을 둘러싼 거대한 변화 속에서 한국통신 노동자들은 지속적으로 저항했다. 95년, 96
년, 97년, 98년 연속된 대규모 투쟁과 파업, 2000년 114분사 거부 투쟁과 한통계약직 노동
자들의 처절한 투쟁 등 저항이 이어졌고 그 당시에는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
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거대한 흐름 앞에서 고용 불안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대규모
구조조정에 맞서기는 했지만 이를 철회시킬 수는 없었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정도의 성과는
있었지만 이 또한 합의 이후의 정부와 회사의 노조탄압으로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면서 대중
투쟁 대오가 위축되었다.
특히 통신 민영화를 둘러싸고 정부와 노조가 대규모 정면 대결과 이를 탄압하는 과정이 반
복된 시기가 김영삼, 김대중 정부 시절이었는데 그 결과 한국통신의 노사관계는 이른바 민주
개혁이 사회적 흐름으로 자리잡던 시대에 역행하여 반인권적, 전근대적 노조탄압이 일상화되
는 양상이 되고 만다.
6
7
민주노조 운동가들에 대한 보복성 인사와 징계는 집요했고 이로 인해 노조가 급격히 무력화
되면서 2002년 완전 민영화와 함께 노조 또한 완전 어용화되기에 이른다. 어용화된 노조는
단지 투쟁을 하지 않는 것을 넘어, 최하위 고과를 연속 받으면 자동으로 해고되는 자동 면직
조항 도입과 같이 노동자를 죽이는 노사합의를 남발하는 반노동자적인 행태를 서슴지 않았
다. 또한 이렇게 어용화된 노조의 행태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KT노조는 해고 상태에 있던 유
덕상, 이해관을 노조에서 제명 조치하기도 했다. 이런 어용화의 최종 완결판이 2009년 국정
원이 주도한 KT노조의 민주노총 탈퇴였다.
<어용적 노사합의 – 부진인력 해고조항>
<민주노총 탈퇴 기사>
(
=MBC)
이러한 부당노동행위가 판을 치면서 노조 선거는 아무 의미 없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모든
노조 선거는 회사에 의한 철저한 감시와 탄압 하에 진행되었다. 투표 구석찍기, 줄지어 투표
하기 등 자유당 시절에나 있었을 법한 온갖 선거부정이 만연하였다. 심지어 어용후보에게 투
표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투표 용지를 사진 찍어 보내라는 지시까지도 있었다. 이런 엉터리
8
선거를 하다 보니 KT노조는 통신사 노조이면서도 2022년이 되도록 전자투표를 거부하고 종
이투표를 고집하는 행태를 보이는 지경이다.
<구석찍기 사진>
(
=
21)
단순한 선거부정만이 아니었다. 전략적으로 민주노조운동의 싹을 뿌리뽑기 위해 민주노조 활
동가들과 그 협력자들에 대해 표적 징계와 비연고지로의 인사조처를 반복했고 이로 이해 민
주노조운동은 대중으로부터의 고립은 심화되어 갔다.
1-3. KT노조의 무력화와 불법 인력퇴출 프로그램의 등장
KT노조가 무력화되면서 경영진은 명퇴거부자, 노조활동가들에 대해 집요한 퇴출작업을 개시
했다. 현장에서의 일회적 부당노동행위를 넘어 본사 차원의 체계적인 기획 프로그램이 가동
된 것이었다. 노조활동가 혹은 명퇴 거부자를 퇴출시키기 위해, 일반 조직에는 없는 별도 편
제의 조직을 만들어 들들 볶거나 낯선 업무를 부여하고, 비연고지로 보내어 고립 무원 상태
9
로 만들어 스스로 견디지 못하고 사표를 쓰게 만드는 퇴출 프로그램을 회사가 만들어 이를
시행한 것이다.
그 시작은 2003년 12월 전격적으로 만들어진 상품판매전담팀(상판팀)이었다. 상품판매전담
팀은 노조활동가, 명퇴거부자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별도 편제 조직으로 만들어져 무조건 상
품 판매 하라는 강압적 지시 외에 상품 판매를 위한 각종 지원, 하다 못해 고객관리를 위한
법인카드 지급조차 없었다. 뿐만 아니라 이들에게 매일 매일 상품판매 일지를 쓸 것을 강요
하는가 하면 심지어 관리자가 이들을 미행하여 사소한 꼬투리라도 잡히면 이를 근거로 징계
를 하였다. 심지어 상판팀 여직원이 목욕탕에서 노인네들 떼밀어주며 핸드폰을 판매했는데
이를 미행하여 근무 중 목욕을 했다며 해고를 시키기도 하였다. 이 여직원은 이 때 받은 충
격으로 쓰러져 국내 최초로 정신병에 의한 산재를 인정받게 되었고 법원 판결로 해고가 무
효화된다.
<최종 목표는 퇴출>
회사는 노골적으로 상판팀의 목표는 퇴출임일 명시한 지시를 내리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이
러한 엄청난 반인권적 노조탄압에 맞서 해당 노동자들이 상품판매전담팀해체투쟁위원회를
만들어 인권단체와 연대하여 끈질기게 투쟁하고 이것이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자 회
사는 1년만에 상판팀을 해체한다. 한편 회사는 상판팀을 해체하자마자 더욱 더 정교한 인력
퇴출프로그램을 만든다. 상판팀과 같이 비편제의 별도 조직으로 만들어 괴롭히는 것이 커다
란 사회 문제가 되자, 이번엔 정상적인 조직 내에 발령해 놓되 업무에 적응할 수 없게 만들
10
어 퇴출시키는 더욱 더 악의적인 퇴출프로그램을 가동한다. 이른바 CP 프로그램이라 불리는
인력퇴출프로그램이 그것이었다. 이는 2006년부터 본격화된다.
<CP 프로그램 사진>
(
=
)
CP는 실적부진자를 의미하는 C-player의 약자로 퇴출대상자를 의미이며, CP프로그램이란
퇴출 대상자들에게 적응하기 힘든 업무를 부여하고, 이에 따라 업무 실적이 부진하면 이를
구실로 비연고지로 인사발령하여 괴롭히는 것을 무한 반복하여 결국은 당사자가 못 견디고
사표를 내게 만드는 일련의 프로그램이었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 보자. KT는 대구에 사는
50대 여성 교환원에게 “통신주에 올라가 전화를 개통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이를 수행하지
못하자 KT는 그녀를 실적부진자라며 최종적으로 울릉도로 발령낸다. 심지어 청주에서는 50
대 여성 교환원에게 통신주에 오르는 훈련을 시킨다며 직원들이 다 보는 앞에서 전주에 오
르라고 지시하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인권침해가 발생하였다.
이렇듯 직무적으로도 수행하기 힘든 업무를 부여했지만, 지역적으로도 완전 고립되기 좋은
지역으로 인사조치를 했다. 경남 밀양이 고향인 손일곤을 전남 고흥으로 발령내고, 마찬가지
집이 전주인 원병희를 포항으로 발령내어 고객불만 처리 업무를 시켰다. 그 결과 사투리로
인한 소통 부재로 업무 수행에 심각한 곤란을 겪게 만들었다. 실제로 이 때의 스트레스로 원
병희 씨는 심각한 적응장애를 겪다가 정신질환에 따른 산재를 받기에 이른다. 더구나 이러한
CP 명단을 회사가 본사 차원에서 작성하고 별도로 관리했다는 사실마저 드러나면서 그야말
로 KT의 반인권적 노무관리는 커다란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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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병희 조합원 산재인정>
(
=IT
)
<CP 명단>
(
=
)
이렇듯 KT의 반인권적 노무관리는 사회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기는 했지만, KT 내적으
로는 이러한 반인권적 노무관리 시스템에 KT 노동자들은 점점 더 위축되어 갔다. 이제는 노
조활동가들과 밥조차 같이 안 먹으려 드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심지어 관리자가 있는 데서는
말도 안 섞는 상태가 될 정도였다. 소위 퇴출대상자로 찍힐까 봐 전전긍긍하는 기업문화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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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노조는 더욱 더 무력화되어 갔다. 실적압박으로 감당하기 자기 돈으로 핸드폰을 개통하
는 자폭이 만연했고, 할 일이 없어도 늦게까지 퇴근하지 않는 게 문화가 되었다. 일부에서는
심지어 휴일근무수당 없이 휴일 날 나와서 일하는 분위기도 생겼다. 밤이고 낮이고 카카오톡
확인 메시지에 응답하기 위해 전화기 소리도 못 죽이고 자야 했다. 그 결과 ‘죽음의 기업’ 이
라는 KT 노동자들의 자조도 등장했다.
<KT 노동자 돌연사>
1-4. 민영 KT, 후퇴하는 통신공공성, 부상하는 CEO리스크
통신의 민영화로 통신 공공성은 크게 후퇴되었다. 민영 KT의 경영진은 해외주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실적 부풀리기와 배당성향 높이기에 몰두했다. 배당액은 급격히 늘어났고, 투자액
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매출을 증대시키기 위한 허수경영, 자산 매각, 설비투자 감소, 고배당
의 경영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민영화 이후 20년의 이 악순환은 서서히 그 결과를 만들었으
니, 이것이 최근 들어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대규모 통신대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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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화 이후 KT의 매출, 수익, 고용 지표>
단위: 십억원, 명
-5,000
0
5,000
10,000
15,000
20,000
25,000
30,000
–
10,000
20,000
30,000
40,000
50,000
60,000
1998
1999
2000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2013
2014
2015
2016
2017
2018
2019
2020
십억원명
KT
연도별
직원수
,
수익
비교
종업원수 매출액 영업이익
연도 1998 1999 2000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매출액 10,196 11,756 13,538 15,945 16,394 16,068 17,068 17,156 17,756 18,660 19,645 19,649
영업이익 609 737 1,051 1,943 2,338 1,822 2,481 2,431 2,379 1,745 1,428 966
종업원수 56,600 47,532 46,095 44,094 43,659 37,652 37,703 37,904 37,514 36,913 35,063 30,841
연도 2010 2011 2012 2013 2014 2015 2016 2017 2018 2019 2020
매출액 21,331 21,990 23,790 23,811 23,422 22,281 22,744 23,387 23,460 24,342 23,917
영업이익 2,175 1,974 1,214 839 (292) 1,293 1,440 1,375 1,262 1,151 1,184
종업원수 31,155 31,981 32,186 32,451 23,371 23,531 23,575 23,817 23,835 23,372 22,720
14
민영화로 인해 KT는 정부지분이 0%인 완전 민간회사가 됐지만 규제산업이라는 점과 지배주
주가 없는 기업지배구조의 특성으로 인해 경영진의 정치권 줄대기는 공기업 시절과는 비교
될 수 없을 정도로 심화되었다. 정권 교체기마다 반복된 검찰의 경영 비리 수사와 CEO의 불
명예 퇴진 혹은 사법처리는 KT 특유의 기업 리스크로 고착되었다. 남중수, 이석채 전임 CEO
들의 연이은 비리 수사와 구속되었고, 그 후임자인 황창규의 경우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과
관련하여 여러 차례 검찰 수사를 받고, 검찰 증언자로 나선 끝에 간신히 임기를 마칠 수 있
었다.
오너쉽 부재의 기업지배구조, 정치권 줄대기, 낙하산 경영진, 정권 교체에 따른 비리 수사,
CEO 구속 내지 불명예 퇴진이 민영화 이후 5년 마다 반복되면서 KT 경영은 통신업과는 어
울리지 않게 단기 실적주의에 빠지는 원인이 되었고 이는 고스란히 장기투자의 실종과 통신
서비스의 본원적 경쟁력 약화를 초래하였다.
경영진의 정치적 줄대기는 코미디 같은 일화를 수도 없이 남겼다. 국정농단 연루와 각종 줄
대기 해프닝, 채용비리, 비자금 조성을 통한 불법정치자금 제공 등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정
도이다. 급기야 2022년에는 미국의 증권감독기구인 SEC로부터 해외부패방지 위반 혐의로
630만 달러의 과징금을 받기까지 하였으며 구현모 사장에 이르러서는 사내이사 3인이 모두
횡령의 공범이 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KT CEO들의 전통이 되어버린 감옥 행이야말로 KT
민영화의 실패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다. 돌파구 없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15
2. KT 새노조 출범 당시의 문제의식
민영화 이후 국민적 통신기업 KT는 빠르게 변화했다. 국가의 신경망을 책임지는 공기업이
아니라 수익 극대화를 통해 주주가치를 실현하는 민간 회사로 변화한 것이다. 국민기업이란
말은 지배주주는 없고 정부지분은 0%, 해외지분이 절반인 KT를 치장하는 공문구가 되고 말
았다.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통신공공성의 후퇴와 영업지상주의의 대두 그리고 가혹한
구조조정의 무한반복이 시작된 것이었다.
경영진은 해외투자자 중심의 주주 이익에 충실하기 위해 매출증대, 투자감소, 비용절감을 통
한 고배당에 올인하고 있었다. 심지어 배당성향이 90%를 상회한 해도 있었다. 매출 지상주의
는 공기업 시절 기술 중심의 숙련과 연공 우위의 기업 분위기를 순식간에 영업 실적 우위의
분위기로 변화시켰다. 대부분 기술직이었던 KT 노동자들은 빠르게 직무 전환하여 영업 업무
에 나서야 했다. 독점 공기업의 민원인 응대에 익숙하던 문화에서 고객 중심으로 바뀌는 근
무환경의 변화는 상당한 스트레스 요인이었다.
기업 전체적인 인력 구성에 있어서도 양적으로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던 통신장비 및 설비
유지 보수 중심의 기술인력의 상당수는 업무전환을 통해 영업인력으로 직무 전환되었다. 장
비와 설비에 따라 세분화되어 있어 한 때 30개를 넘던 직렬은 사무와 기술로 통합되었고 직
렬 혹은 직무가 사실상 무의미해질 만큼 모든 직원들이 영업 압박에 시달렸다. 어떤 직무를
수행하던 간에 모든 인사고가와 승진 심사 등은 영업 실적에 의해 좌우되었다. 이에 따라 KT
고유의 자폭문화(실 가입자에게 판매하지 못하고 자기 이름으로 개통한 핸드폰)가 조성되었
고 허수경영이 본격 등장하기 시작했다.
기술 중심의 기업문화 속에서 특정 장비에 대해 기술을 익히면 평생 대우 받으며 직장 생활
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던 기술 숙련 우대 노동이 하루 아침에 사라져 버리는 데 따른 노동자
들의 좌절감은 매우 컸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 별로 없이 하루 종일 장비 만지는 일을 하던
기술직 노동자들이 하루 아침에 영업직으로 발령 나서 핸드폰 팔러 다녀야 한다는 것 또한
적응하기 힘든 일이었다. 여기에 더해 매일 쏟아지는 판매 실적 압박은 그야말로 최악의 스
트레스였다.
16
이러한 거대한 변화 앞에 노동자들은 주눅이 들대로 들었다. 물론 한 때 매우 전투적 기상을
통해 이에 맞서기도 했으나 개별 노동조합 차원의 대응으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무력
감과 국가와 회사의 가공할 노조탄압에 대한 패배감이 겹치면서 노동자들은 급격히 위축되
었다. 그리고 오히려 대세가 되어버린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변화에 적응하면서 이를 적극 수
용하는 측과 이러한 흐름으로부터 탈락되면서 회사로부터 배제와 감시당하는 측으로 빠르게
양극화되기 시작했다. 물론 다수는 이러한 변화를 소극적으로 추종하는 길을 택했지만 말이
다. 이러한 노동자 내부의 균열과 양극화는 민영화 이후 극도로 심화되었고 이를 통해 노조
는 더욱 무력화되었다.
이러한 KT 노동자 내부의 균열과 저항의 약화는 MB 정권 낙하산 이석채 체제의 등장과 동
시에 강력한 노동통제로 나타났다. 엄청난 실적 압박과 가혹한 구조조정, 노동 관련법을 무
시한 장시간 노동이 등장했고 심지어 실적 부진자들은 해고시킬 수 있는 터무니없는 단체협
약이 등장했다. 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에서 수당 없이 장시간 근무시킨 것이 적발되기도 했
으나 이는 조족지혈이었다. 이러한 반노동자적인 경영은 곧바로 연이은 노동자들의 자살과
죽음의 행렬로 이어졌다. 이는 단순히 KT에서만 발생한 게 아니라 자회사에서도 심각해지면
서 KT는 ‘죽음의 기업’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써야 했고, 국회 국정감사에서 KT 노동문제는 단
골 의제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 역행적인 노동통제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KT 노동자들의 목소
리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이에 KT 노동 현실을 적극 외부화하고 더 나아가 KT 경영의 문제
점과 통신공공성의 후퇴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제기되었지만 이를 구체화할
채널을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2012년 복수노조 제도가 시행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실천에
옮길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 당시는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민주노조운동이 약화되고 있었
고 이로 인해 “복수노조 도입”에 대한 부정적 견해가 지배하던 시점이었다. 즉 복수노조 도
입을 계기로 자본이 사실상 어용노조를 만들어 민주노조를 깨는 도구로 악용할 것이라는 우
려가 민주노조운동 내부에 팽배해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의 연장에서 KT 민주노조운동 진영
내에서도 선거 부정이 만연해 있지만 그래도 선거를 통한 어용 KT노조의 민주화 노선이 유
일한 민주노조건설 경로임을 주장하는 동지들이 다수였다. 반면 비록 소수라도 독립된 노조
를 만들어 KT의 노동인권 침해, 낙하산들의 경영비리와 민영화 이후의 통신공공성 후퇴에
대해 정면으로 문제제기를 하여야 한다는 동지들도 있었다. 심각한 노동인권 후퇴와 신자유
주의 경영에 대한 비판을 노조 민주화 이후로 미루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2011년 7월 KT새노조가 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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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새노조는 출범을 준비하는 1년 여 동안 준비팀 자체 세미나를 통해 분명히 설정한 노조
활동의 상이 있었다. 가장 강조되었던 것이 생활전선에서의 투쟁이었다. 모두가 실적 압박에
서 벗어나지 못해 불필요한 상품을 허수로 판매하거나 자폭하는 현실에서 이에 맞서 불필요
한 상품을 팔지 말자는 다짐과 동시에 정시출퇴근하자는 것이었다. 이를 선언적으로 하자는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현장에서 실천하자며, 실천을 상호 독려하기 위해 정기적인 회합을 갖
기로 하였다. 또한 민영화 이후 만연된 비리경영에 대한 감시, 통신공공성 외면에 대한 비판
등에 적극 나설 것을 결의하였고 이를 실천에 옮겼다. 이러한 내부 결의에 힘입어 제주 7대
경관 가짜 국제전화 사건의 폭로, 대규모 허수경영 실태에 대한 비판, 더 나아가 KT 국정농
단 관련 사건 고발 및 김성태 딸 채용비리, 정치자금법 위반 등 굵직한 KT 경영진의 일탈행
위에 대한 폭로 및 고발의 주체로 KT새노조가 나설 수 있었다.
아울러 KT 정규직에 대한 가혹한 구조조정 반대를 넘어 그 결과로 만들어진 증대하는 비정
규직의 조직화에 나설 것을 결의하였다. 이를 위해 그룹사 차원의 노동인권 침해에 대한 대
응지원과 노조 결성 지원들의 실천에 나설 수 있었다. 손말이음센터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계약 해지된 스카이라이프 해고 노동자들의 정규직으로의 원직복직, KTS새노조 건설 등이
그 성과였다. 더 나아가 통신노동자의 공동의 문제의식을 만들어내기 위해 통신관련 노동자
들의 연대 그리고 국제연대에도 관심을 기울이기로 하였고 이 역시 실천에 옮길 수 있었다.
통신사노조(LGU+, SKB, 희망연대노조 등)과의 교류를 통해 통신노동자에 대한 공동의 보고서
를 발행했으며 초보적이지만 일본 통신노동자들과의 국제 교류도 있었다.
이상과 같은 문제의식을 집대성한 KT새노조의 노선이 통신공공성을 위한 경영감시, 노동인
권 보장을 위한 생활투쟁, 통신 비정규직 조직화 등을 위한 사회연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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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KT 새노조의 발자취
3-1. 생활전선 투쟁(정시출퇴근, 불필요한 상품 안 팔기)
2011년
새노조는 출범과 동시에 새노조 행동수칙을 발표하였다. 거기서 가장 강조한 것
이 정시출퇴근과 불필요한 상품 안 팔기의 실천이었다. 매우 간단해 보이는 것이지만 이 운
동은 일반 KT 노동자들 사이에 미묘한 파장과 긴장을 불러일으켰다.
그 당시 KT를 지배하고 있던 것은 이석채의 공포경영이었다. 그는 KT의 공기업 관행과의
단호한 결별을 선언하면서 우습게도 대거 정치권 낙하산 인사를 끌어들였다. 심지어 현역 검
사 출신을 윤리경영실장에 임명하며 대대적인 내부 감사를 단행했다. 이를 통해 실제로 관행
처럼 존재했던 인사비리, 계약비리 등과 관련된 KT 임직원들을 형사 처벌하게 만들기도 하였
다. “혁신 전도사”는 그 당시,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그가 내세웠던 올레경영을 빗대 낙하산
들을 “올레 KT”, 낙하산이 아닌 토종 KT를 의미하는 “원래 KT”란 말이 유행했고 이 원래 KT
들이 비효율과 비리의 상징처럼 낙인이 찍히던 시절이었다. 그랬던 그가 정작 김성태 딸 부
정채용으로 구속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다. 또한 대규모 구조조정도 서슴지 않았으며
더 이상 통신은 먹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탈통신 전략을 발표하였다.
공포경영 아래 현장의 분위기는 얼어붙었다. 그야말로 지시된 목표 실적은 무조건 달성해야
했다. 달성 못하면 인사 조처를 당하는 것이 당연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전국의 각 지점
어디 할 것 없이 실적 달성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만 하는 말 그대로 까라면 까는 분위
기가 연출되었고 이에 반기를 드는 이들에 대해서는 가차없는 인사 불이익이 가해졌다. 심지
어 여직원조차도 영업실적이 부진하다는 이유로 통신주에 올라 전화를 고치라는 인사발령이
나던 시기였다.
대다수 지점에서 저녁 7시, 심지어 일부 지점에서는 저녁 9시에 그 날 그 날의 영업 실적을
결산하는 회의를 했다. 그날 실적이 없으면 퇴근을 못하고 지인에게 전화라도 해서 실적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실적이 저조할 때 인사고과 최하위는 물론이고 거듭
실적부진자로 찍힐 경우 직무전환, 비연고지로의 인사뺑뺑이를 돌렸다. 결국 이런 분위기를
견디다 못한 직원들은 고객에게 판매를 못했을 경우 자신의 돈으로 상품을 자폭하기도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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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공포경영, 실적압박, 노동인권 침해는 상호작용을 일으키며 노조는 더욱 무력화되었고 직
원들의 자살과 돌연사가 줄을 이었다.
이런 식의 생활에 시달리던 KT 분위기에서 KT새노조가 대놓고 불필요한 상품 안 팔고 정시
퇴근하겠다고 나선 것은 작은 파문이었다. KT새노조 조합원이 있는 지점에서는 상당한 긴장
이 조성되었다. 게다가 이러한 노조 활동을 이유로 차별을 받거나 인사불이익을 받을 경우
노조 차원에서 노동인권을 이슈로 사회연대를 통해 총력 투쟁하겠다는 새노조의 작은 반란
은 매우 신선한 충격이었다.
실제로 노동부 특별근로감독 요청, 부진인력퇴출프로그램 폭로 등 초기 KT새노조 활동이 생
활전선투쟁에 집중되면서 회사의 강압적 노무관리는 주춤하였다. 실제로 이러한 KT새노조의
생활전선투쟁에 동의해서 조합에 가입하는 이들도 생길 만큼 이는 성과가 있던 투쟁이었다.
아울러 이러한 노동인권의 문제제기를 통해 비연고지로 인사조치 되어있던 손일곤, 원병희
조합원의 연고지로의 인사회복의 성과도 이룰 수 있었다.
한편 2014년 KT새노조 출범 이후 최초의 대규모 명예퇴직이 있었다. 황창규 회장 체제 출
범과 동시에 단행된 대규모 명예퇴직 또한 매우 반인권적이고 강압적인 것이었다. 명퇴 대상
자로 분류된 이들에 대해 일체 업무를 중단하고 명퇴에 동의할 때까지 별도 교육을 시키며
심리적 압박을 가했다. 특히 이들을 대상으로 “명퇴 거부자는 전원 비연고지로 보낼 것이며
직무도 업무지원단이라는 별도 조직을 만들어 매우 힘든 업무를 하게 될 것”이라는 협박이
이어졌다. 또 실제로 본보기 식 겁주기 인사조치 등도 일부 있었다.
정권이 바뀌고, 경영진이 바뀌어도 반복되는 KT의 노동인권 침해에 대해 KT새노조는 KT 노
동인권의 문제를 보다 보편적 시각,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관점에서 제기할 필요성을 느꼈
다. 이에 KT새노조는 노동인권단체와 함께 KT직장내 괴롭힘 백서를 만드는 작업에 나섰다.
KT새노조가 노동 전문학자와 정신과 의사 그리고 인권운동가들을 현장 노동자들과의 인터뷰
할 수 있도록 연결시켜 공동 연구를 진행하였던 것이다. KT 노동자들이 겪은 놀라운 반인권
적 실태 증언과 충격적인 정신과적 의학 소견이 발표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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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직장내 괴롭힘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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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업무지원단 해체투쟁
2014년이 되면서, 이석채가 물러나고 삼성전자 출신의 반도체 권위자 황창규 회장이 취임했
다. 그러나 그의 첫 선택 또한 대규모 구조조정이었다. 주주총회를 거쳐 KT회장으로 선임된
지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은 4월 6일, 매우 전격적으로 명퇴가 단행되었다. 전격적인 속도만
큼이나 방법도 파격적이었다. 강압적 면담을 통해 명퇴를 거부하면 특수조직으로 발령내서
퇴직하는 날까지 비연고지 근무를 시킨다는 협박이 공공연히 자행되었다. 투신을 우려해서
소방법을 어겨가며 모든 지사 건물 옥상을 폐쇄하라는 지시가 내려갔는가 하면, 대상자들의
책상을 빼고 심지어 짐 싸라고 박스를 나누어주기도 했다. KT새노조는 즉각 성명을 발표하
고 직원들로 하여금 협박에 굴해서 명퇴하지 말 것을 소식지와 팟캐스트 방송을 통해 호소
하였고 많은 호응을 받았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8300여명이 KT를 떠나게 되었고 이는 국내
기업의 구조조정 역사상 전무후무할 최대 규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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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구조조정의 광풍이 끝나자마자 회사는 명퇴 거부자 290여명을 CFT라는 비편제 조직
으로 발령냈다. 주로 사무실의 위치가 도심과는 매우 동떨어진 외곽으로 사실상 보복성 귀양
지라는 것이 명확했다. 당사자들은 즉각 투쟁에 나서기로 하였고 농성전에 돌입하였다. 회사
는 대규모 명퇴와 그 과정에서의 강압성에 대해 여론의 주목을 받은 데 이어 명퇴거부자들
이 농성에 나서자 오지발령을 취소하고 사무실을 시내 및 거주지와 가까운 곳으로 변경하는
조치를 약속하였다. 이로서 구조조정과 이에 따른 부당발령 투쟁은 일단락이 지어지게 된다.
그러나 CFT는 본질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이에 CFT 해체투쟁위원회가 조직되었고 업무지원
단 부서 내부에서의 지속적인 투쟁과 매주 이어지는 집회, CFT(업무지원단)조직의 부당성을
알리는 홍보활동 등 투쟁을 이어나갔다. CFT라는 조직부서가 업무지원단이라는 이름으로 바
뀌고 한동안 이들에게 적절한 업무를 부여하지 못한 채 부서를 운영하다가 해가 바뀌고 시
간이 지남에 따라 회사경영진은 물론 소속직원들도 점차 그리고도 빠르게 그 조직에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다.
KT새노조 역시 업무지원단 해체투쟁위원회에 참가하여 활동을 같이 하였으며 특히 직장내
괴롭힘에 대하여 실태조사 보고서를 만들었다. KT 퇴직자를 비롯하여 KT내 비정규직(계열사
및 자회사 포함), 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CFT소속 노동자들의 집담회 등을 통하여 생생한 증
언을 바탕으로 이루어졌으며 CFT직원들의 적극적인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이후 국회 차원의 직장내 괴롭힘에 대한 입법활동의 근간이 되었다.
3-3 경영감시의 출발점, 7대 경관 가짜 국제전화 공익제보
KT새노조가 가장 뚜렷하게 성과를 낸 투쟁은 경영진에 대한 감시 영역이었다. 민영화 이후
수익지상주의에 경도된 경영진은 매우 무리한 방식으로 수익을 늘리려 하였다. 이러한 경영
진의 분위기에 편승해서 각종 꼼수와 불법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제주 7대경관 가짜국제전화사건이었다. 2011년 한국사회는 세계 7대자
연경관 선정이라는 어이없는 코미디에 휘말린다. 버나드웨버라는 스위스인이 자신의 돈벌이
를 위해 세계 7대경관 선정 전화투표를 진행하였는데, 여기에 제주도가 엮이면서 청와대부터
나서 제주도를 밀자며 대대적인 국민캠페인을 전개했다. 김윤옥 당시 영부인이 명예추진위원
장을 맡았고 제주도와 관련 있는 유명 연예인이 총 동원되어 캠페인이 전개되었고 심지어
제주도는 도의 행정전화로 계속 걸어 KT 미납요금만 200억원이 넘어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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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화투표의 한국 주관사가 KT였고 전화투표 번호는 001-1588-7715였다. 그런데 이 전화
는 “001” 이라는 국제전화식별 번호를 부쳐 국제전화인 것처럼 꾸며서 비싼 요금을 청구한
것일 뿐 실제로는 모든 전화가 국내에서 처리된 가짜 국제전화였다. KT새노조는 이를 제보
받아 폭로하였다. 아울러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익제보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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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몇 차례 거짓 해명을 하였으나 끝내 진실이 밝혀져서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과태료
처분을 받았고 이 전화투표를 통해 얻게 된 수익금은 전액 제주도에 공익기부하였다. 그러나
정작 공익제보인 이해관 당시 KT새노조 위원장에 대해서는 매우 치졸하고도 가혹한 보복조
치를 했다. 정직, 전보, 해고 등 KT내에 있는 모든 징계를 통해 공익제보자를 괴롭혔으나 결
국 법원 판결로 징계조치는 모두 무효가 되었고 그 동안의 괴롭힘에 대해 오히려 위자료
3000만원을 물어줘야 했다. KT새노조의 통쾌한 완승이었다.
이 즈음해서 KT새노조에는 이석채 경영비리에 대한 제보가 속속 이어졌다. 온갖 자료가 KT
새노조로 넘어오기 시작했다. 이석채 회장의 탈통신 전략은 한마디로 말해 KT 보유 자산을
매각해서 비통신분야 기업을 M&A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자산 특히 KT가 보유하던 부동
산은 헐값에 매각하고, 사들이는 비통신 자회사는 부실한 것이라는 게 제보의 요지였다. 현
장은 여전히 공포경영에 눌려 있었지만 제주 7대경관 폭로 투쟁에서 승리한 KT새노조의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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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에 대한 신뢰가 쌓이면서 매우 민감한 자료들을 KT새노조로 보내는 임직원들이 있었던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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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퇴출을 위한 본사 차원의 자료부터 자산매각, M&A 검토보고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
료가 새노조로 넘어왔다. 이에 KT새노조는 이를 바탕으로 이석채 퇴진 투쟁을 결의하고 참
여연대 등 많은 시민단체와 함께 이석채를 비롯한 경영진에 대한 고발을 꾸준히 제기했다.
국회토론회, 기자회견 등을 통해 문제 제기한 것이 쌓이며 이석채의 굳건한 권력도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국가전략물자인 무궁화 3호 인공위성을 불법 매각한 사실마저 드러나
면서 이석채 체제는 크게 흔들렸다. 결국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이석채는 검찰 소환과 본격
수사를 앞두고 스스로 사퇴하였다. 철옹성 같던 공포경영의 상징, 혁신전도사 이석채를 퇴진
시킴으로써 KT새노조는 경영 감시 영역에서 두드러진 성과와 함께 내외의 큰 주목을 받게
된다. 심지어 KT새노조의 활동이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제작되어 부산영화제 등에 초청 상영
되는 쾌거를 이루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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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산다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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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황창규 회장의 국정농단 연루에 맞선 경영 정상화 투쟁
이석채가 검찰 수사 끝에 불명예 퇴진으로 물러난 이후 2014년 황창규 회장이 등장했다.
MB 낙하산들의 탈통신전략과 공포경영, 노동인권 침해에 대한 강력한 KT 내외의 비판 속에
출범한 황창규 체제는 초반 대규모 명퇴와 업무지원단 출범을 제외하면 이석채 체제에 비해
완화된 형태의 노무관리와 통신본원적 경쟁력 강화를 표방하였다. 초기 황창규 체제는 박근
혜 정부의 국정운영과 밀착되지 못한 탓인지 자신의 권력을 굳건히 하는 데서부터 다소 서
투른 모습을 연출했다.
취임한 첫 해부터 황창규는 허망한 정치 사기로 구설수에 올랐다. 2014년 8월 사기꾼이 KT
황창규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청와대 이재만 비서관을 사칭하면서 취업 시도를 했다. 황창규
회장은 그를 직접 만나 취업을 약속했다가 청와대 확인 결과 사기임이 밝혀지자 취소하는
어이없는 해프닝에 연루된 것이다. 이 웃픈 해프닝이야말로 황창규 호의 앞날을 예측하게 하
는 신호탄이었다. 끊임없이 권력 줄대기에 집착하지만 밀착되지 못한 황창규 호의 KT는 결
국 국정농단의 한 가운데 서게 된다. 그리고 이는 두고두고 황창규 회장과 그 임원들의 발목
을 잡는 정치자금법 위반의 예고편이었다. 이 과정에서 KT새노조는 황창규 체제의 정치적
줄대기 중독을 강력히 비판하고 국정농단특별검사에 황창규를 고발하고 KT 경영진의 불법
정치자금 제공 및 횡령 사건을 문제 제기함으로써 내부 경영감사자로서 역할을 수행하였다.
먼저 국정농단 연루 과정은 이랬다. 2016년 정국을 강타한 최순실 국정농단에 관한 폭로의
시작부터 KT는 등장했다. 최순실의 각종 민원 창구 노릇을 한 안종범 수첩이 드러나자마자
KT 이동수 전무의 이름이 등장했다. 그는 불현듯 없는 자리를 신설해서 등장한 낙하산 인사
로 KT에서는 그의 배경을 모두가 궁금해하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 배후가 차은택이며, 이
동수가 차은택이 경영하는 광고회사(최순실이 실소유자)에 KT의 규정을 어겨가면서 광고를
몰아주었음이 특검 수사를 통해 밝혀졌다. 또한 사실상 최순실이 좌지우지한 것으로 알려진
미르재단 등에 KT가 거액의 출연금을 냈음도 확인되었다. 특히 이 출연금은 이사회 내부절
차를 생략했다가 사후 동의를 받은 것이어서 절차적으로도 문제가 있었다.
이렇듯 국정농단에 KT가 깊숙이 개입된 게 드러나면서 이런 일련의 일들이 황창규 연임과
관련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고 민영화 이후 더욱 심화된 KT 경영진의 정치적 줄
대기 중독이 사회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또한 이러한 기초 프로세스 위반조차 걸러내지 못하
는 KT 이사회의 견제 역할 부재에 대한 문제제기도 광범위하게 제기되었다. 모든 안건을 만
장일치로 처리할 뿐 사실상 견제역할을 수행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었다. KT새노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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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회의 거수기 행태를 비판하고 국회에서의 토론회 개최 등을 통해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사회적 비판자의 역할에 앞장섰다. 또한 더 나아가 황창규와 관련 임원들을 국정농단특검에
고발하는 등의 적극적인 대응도 하였지만, 황창규는 자신은 강요의 피해자 행세를 하면서 국
정농단 연루 의혹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3-5. 김성태 딸 부정채용 사건 등 KT 경영진의 정치적 줄대기에 맞선
투쟁
이런 KT 경영진의 정치적 줄대기의 끝판 왕이 김성태 딸 부정채용 사건이었다. 2018년 KT
새노조로 “계약직이었던 김성태 의원 딸이 부당하게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다”는 제보가 들어
왔다. KT새노조는 최초에는 이 사건이 단순하게 “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특
혜를 준 것”으로 이해하고 이를 <한겨레신문>에 제보하였다. 당시 KT는 강압적 노무관리로
커다란 사회적 비판을 받았고 이에 따라 국회에서는 KT 이석채 회장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하려 하였는데, 여당 간사이던 김성태 의원이 극력 반대하여 무산된 바가 있었다.
그런데 <한겨레신문>과 KT새노조의 협조 취재 결과, 이는 단순히 계약직의 정규직 전환 과
정에서 혜택 정도가 아니라 입사지원서 작성, 면접, 점수 조작 등 총체적 인사비리임이 드러
났다. 이는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특히 인터넷 여론을 주도하는 젊은이들 사이에
서 분노가 폭발했다. 이런 여론을 타고 KT새노조로 여러 건의 추가 채용비리 제보가 쏟아졌
다. 정치권 유력자들의 자제 및 전 현직 임원들의 자제 심지어 어용노조 간부들의 자제에 이
르기까지 다양한 채용비리가 있었다는 것이고 일부는 사실로 확인되었다. 그리고 김성태 의
원 딸의 채용비리와 관련된 구체적 추가 제보도 이어졌다.
이런 제보를 바탕으로 KT새노조는 고발장을 제출하고 검찰수사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여러
차례 발표하였다. 여론이 들썩거리자 검찰은 본격 수사에 착수했는데 시작하자마자 수사를
지휘하던 서울 남부지검장의 처 조카도 KT에 특혜 채용된 점이 확인되었다. 한마디로 점입
가경이었다. 마침내 검찰은 이석채를 비롯하여 관련 임원들을 대거 구속하였다. 그렇지만 검
찰 수사로 확인된 채용비리는 12건에 불과했고, 그 관련자들도 김성태 딸을 제외하곤 모두
퇴사하지 않았다. 물론 KT 내부에서도 이들에 대해 아무런 사후 조치를 하지 않았다.
한편 이 채용비리와 함께 KT 경영진의 정치 중독증을 드러낸 또 다른 사건이 경영고문 사건
이었다. KT는 전직 국회의원 보좌관 등 정치권 연루 인사들과 사정기관 관련자들을 경영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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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으로 위촉하여 매월 자문료 명목으로 적게는 500만원에서 많게는 1300만원이 넘는 거액
을 지급했다. 구체적으로는 △정치권 인사 6명 △퇴역 장성 1명 △전직 지방경찰청장 등 퇴
직 경찰 2명 △고위 공무원 출신 3명 △업계 인사 2명이었다.
한편 박근혜가 탄핵되고 조기 대선과 문재인 정부의 출범이라는 정치적 공백을 틈타 황창규
회장은 무난히 2017년 연임에 성공했다. 국정농단 연루에 대한 심각한 국민적 의혹에서 간
신히 살아남은 황창규 호는 2기 시작과 동시에 불법정치자금 사건에 휘말리며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2018년 KT새노조로 “KT가 황창규 회장 연임을 위해 비자금을 조성하여 이 돈을
임원들 명의로 쪼개어 국회의원들에게 정치기부금을 제공한 혐의로 경찰 내사를 받고 있다”
는 제보가 접수된다. 아울러 이 비자금은 회사의 공금으로 구입한 상품권을 할인 받아 조성
하였으며 CR 관련 임원 대다수가 이 범죄에 연루되었고 특히 일부는 국회의원들이 부담을
느껴 반납한 돈을 횡령했다는 사실도 제보된다.
이에 KT새노조는 황창규와 관련 임원들을 경찰 및 검찰에 고발하였다. 그리고 이들의 처벌
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약탈경제반대행동 등 시민단체와 함께 대대적으로 전개하였다. 그 결
과 이 사안은 아직 현재 재판이 최종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약식명령에서 구현모 현 사장이
정치자금법 위반 1000만원, 횡령 500만원의 벌금을 선고받기에 이른다. 또한 이와 관련 미
국 증권감독기관인 SEC로부터 해외부패, 회계부정 등의 혐의로 과징금 630만불을 부과받기
에 이른다.
3-6. 아현화재사태와 통신공공성을 위한 투쟁
이렇듯 CEO가 정치적 줄대기에 여념이 없는 와중에 2018년 11월 24일, KT 아현국사 통신
구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서울 절반 가까이의 인터넷, 이동통신 등 모든 통신장비를 집중해
놓은 아현국사에서의 화재로 대규모 통신대란이 발생한 것이다. 통신 불통으로 엄청난 혼란
이 발생했고, 신용카드 결제가 상당기간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자영업자들의 피해는 눈덩이처
럼 불어났다. 이에 대해서는 KT가 창사 이래 최초로 대규모 배상까지 하게 된다. 뿐만 아니
라 119 신고망조차 단절되어 70대 노인이 사망하기도 하였다. 통신공공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단 한 번의 사고가 묵직하게 우리 사회에 일깨워 주었다.
이 사태의 원인을 둘러싸고 KT 경영진은 우연적 화재로 인한 불가피한 사고라는 입장을 견
지하고자 했으나 KT새노조는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와 함께 이 사고가 말로만 통신의 본원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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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력을 강조할 뿐 통신 공공성을 담보할 투자를 줄인 데 따른 인재”이며 따라서 책임이 경
영진에 있음을 분명히 하였다. 정부와 국회의 조사가 진행되면서 KT가 비용절감을 위해 아
현국사에 장비와 시설을 집중시키면서도 보안등급을 D 등급으로 실제보다 낮게 유지하였고
이렇듯 보안등급을 낮춤으로써 망 이원화를 하지 않았고 또한 스프링쿨러 등의 소방시설도
하지 않을 수 있었음이 드러났다. 결국 통신공공성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 투자조차 이루어지
지 않았음이 밝혀졌고 이는 결국 KT가 피해를 배상해 줄 수밖에 없는 커다란 여론의 압력으
로 작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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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통신공공성과 관련하여 비록 대외적인 파장은 크지는 않았지만 내부적으론 상당한 후
폭풍을 불러일으킨 유빈스 허수경영 폭로 투쟁이 있었다. 2015년 KT새노조는 내부 제보를
통해 KT안양지사에서 실적 부풀리기를 위해 관내 유빈스라는 회사 명의로 대량의 인터넷 회
선을 허수 개통 해놓고 몰래 요금 감면을 하고 있음을 폭로했다. 이 사건으로 말로만 회자되
던 KT 허수경영의 전모가 확인될 수 있었고 이와 관련해서 이 허수 개통을 통해 실적 부풀
리기를 한 관련자 전원이 해고 등의 중징계를 받았다.
3-7. 반복되는 통신대란에 대한 KT새노조의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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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황창규 회장이 물러나고 그의 비서실장 출신 구현모 사장 체제가 출범했다. 10여년
만에 외부 낙하산이 아닌 KT 출신 CEO가 등장했지만 ‘Digico 대전환’이라는 구호만 요란할
뿐 바뀐 것이 없었다. 오히려 회사 경영진이 통신에 대한 관심 소홀이 누적되고 기술인력을
홀대하는 분위기가 지속되면서 통신 분야에서의 사고가 봇물 터지듯 분출되었다. 아현국사
화재로 인한 통신대란에도 불구하고 진지한 자기 반성 없이 시간벌이와 약간의 배상으로 여
론의 비판을 무마한 땜질처방식 통신 소홀의 필연적 귀결이었다.
2021년 4월, 최대 10기가 인터넷 상품을 100분의 1 속도에 불과한 100Mbps 수준으로 제
공했다는 IT 유튜버 '잇섭' 폭로로 100년 통신기업 KT의 인터넷 품질 논란이 불거졌다. 과기
부 등 정부기관이 나서서 조사한 결과, 10기가 인터넷의 경우 고객 속도 정보 설정 오류와
장비 관리 소홀이 원인으로 밝혀졌다. 또한, 인터넷을 개통할 때 속도를 측정하지 않거나, 측
정 결과 최저보장 속도에 미달했음에도 이를 고객에게 고지하지 않고 개통을 진행한 사실도
드러났다. 통신 3사의 500메가~10기가 인터넷속도를 샘플링 조사한 결과, KT는 조사대상
총 21만회선 중 2만 4221회선이 속도미달이 해당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KT 조사 대상 총
21만 회선 중 11%가 여기에 해당했다. LG유플러스 1.1%(1401회선), SKT 0.2%(86회선), SK
브로드밴드 0.1%(69회선)와 비교했을 때도 상당히 높은 수치였다. 그 결과 KT는 정부로부터
5억원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받고 이용자 보호 평가에서 2단계 등급이 강등되는 수모를 겪
어야 했다.
인터넷 속도 저하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직후, 더 어처구니없는 통신대란이 발생했다.
2021년 10월, KT 서버 내 단순 프로그래밍 작업 실수로 유무선 망 전체가 마비되면서 전국
의 모든 통신이 불통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일반 소상공인뿐만 아니라 금융가, 병원, 공공기
관 등 주요 시설에서도 1시간가량 전산 마비 사태가 이어지면서 피해 규모가 상당했다. KT
가 추산한 보상금액만 400억원에 이를 정도였다. 그런데 과기부조사 결과 확인된 장애 원인
이 가관이었다. 장애는 25일 오전 11시 16분쯤 시작돼 낮 12시 45분 복구가 완료될 때까
지 약 89분간 전국적으로 이어졌는데, 그 원인이 작업자의 명령어 입력 오류였음이 확인된
것이다. 구체적으로 KT부산지사에서 ‘기업 망 라우터’ 교체 작업 중에 작업자가 사고 발생
라우터에 명령어를 입력하면서 ‘exit’라는 단어 하나를 누락했고, 작업자가 잘못된 명령어를
입력한 뒤 전체 인터넷망이 먹통 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30초에 불과했다.
이 명령어 입력 오류는 결코 단순한 실수로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작업 프로세스만
준수했다면 절대로 발생할 수 없는 전형적인 인재였음이 확인된 것이다. 당초 새벽 1~6시에
하는 야간작업으로 승인된 장비 설치 작업을 인터넷 사용이 많은 월요일 점심 시간대에 멋
대로 진행했고, 협력업체 직원이 무단으로 장비 교체 작업을 하는 데 이를 감독해야 할 K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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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은 아예 현장에 있지도 않았다. 또 잘못된 설정이 전국망으로 퍼져가는 것을 차단할 별
도의 안전장치도 마련돼 있지 않았다. 그런데 이러한 사고는 결코 우연이 아니어서, KT 직원
들의 입회감독 없는 협력업체의 무단 작업이 전국 곳곳에서 관행적으로 이루어졌다는 내부
증언이 KT새노조로 쏟아졌다. 거듭된 구조조정에 따른 만성적 인력 부족에 주 52시간 노동
제가 실시되면서 사실상 통신의 기본 중의 기본이어야 할 장비교체 작업에의 입회감독이 제
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KT새노조는 부산발 전국 통신대란 사태는 전형
적인 인재이며 구현모 등 경영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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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2022년 1월 9일 밤 11시경, 1시간 동안 전국 곳곳에서 올레 TV 지상파와 종편 일부
채널이 나오지 않는 장애가 발생했다. 올레 TV의 셋톱기기에서 문제가 발생해 최대 49만명
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산되었다. 이로써 KT는 지난 2018년 아현지사 화재 사건 이후 대
형 통신 사고에 대한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지난 해 인터넷 먹통 사태에 이어 금년의
IPTV 장애가 터지면서 통신사로서의 기본에 대한 사회적 질타가 거세지고 있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특별한 통신 관련 사고가 없었던 시기에 유독 KT에서만 굵직한 사건이 3번
연달아 발생했다. KT새노조는 "전국통신 장애 후 KT 내부에서는 네트워크 안정 구호만 외칠
뿐 실질적인 개선 조치가 전혀 없었”음을 비판하면서 "구현모 체제에서 유독 쏟아지는 통신
대란을 계속 일시적 실수로만 치부해서는 대책이 나올 수 없다"며 이사회에 통신의 기본을
지키기 위한 지지한 성찰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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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비정규직 조직화 등 사회연대 투쟁
2011년 이석채 공포경영에 맞서 내부 투쟁에 집중하던 KT새노조는 2016년 촛불혁명과 탄
핵이라는 커다란 정세 변화를 전후해서 KT 계열사 조직화에 눈을 돌릴 수 있었다. 특히
2017년 대통령선거의 최대 이슈가 비정규직 정규직화, 간접고용 직접고용으로의 대체 등이
었던 만큼 노동자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었다. 이에 KT새노조는 KT 계열사 중 통신의 본연
의 업무를 맡고 있으면서 KT본체에서 외주화 된 계열사의 노동 실태 조사하고 이 내용을 홍
보하는 데서 조직화를 출발하기로 하였다(KTS, KTCS, KTIS, M&S 등). 언론을 통해 KT 새노조
의 활동을 주목하고 있던 차에 KT새노조가 계열사 노동자들에게 보낸 소식지를 접하자 여기
저기에서 “가입 문의”와 “노조 결성 문의”가 잇따랐다. 청각장애인들의 콜센터인 손말이음센
터, KT스카이라이프, KTS, MOS 동지들이 그들이었다.
손말이음센터는 한국정보화진흥원 소속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소통(문자와 수화로)을 돕
는 곳으로 일은 한국정보화진흥원에서 하지만 고용은 KTCS 소속인 간접고용 노동자들이었
다. 이들은 매우 열악한 노동환경에 처해 있었다. 수화통역이라는 전문성에도 불구하고 최저
임금 수준의 낮은 임금과 파견 노동자라는 불안한 고용 속에서 24시간 운영되는 콜센터의
복무조차 노동자의 사정을 고려함 없이 일방적으로 회사가 지시하는 식이었다. 특히 장애인
과의 통화가 영상으로 진행되는 관계로 여성 노동자들을 상대로 한 성범죄가 빈발하였지만
그 누구도 피해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센터를 운영하는 한국정보
화진흥원도, 고용주인 KTCS도 완전 나몰라라 였다.
이러한 조건에서 1기 지회장을 맡을 황소라 지회장이 KT새노조를 찾아와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도록 연대해 줄 것을 요청해 왔다. 이에 KT새노조는 내부 결집이 우선이라는 판단 아
래 내부 회의와 교육을 통해 노조활동을 통해 얻고자 하는 목표를 대중적으로 확정하고 그
에 따른 단결을 다짐하는 모임을 조직해 나아갔다. 이를 통해 한국정보화진흥원 직고용, 상
습적 성범죄 위험 노출 방지대책마련,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생활임금 수준으로 인상, 늘
어나는 이용자 대비 부족한 중계 인력 확보, 장애인 단체와의 연대의 기치 아래 2017년 6
월 1일 KT새노조 손말이음센터 지회를 출범시킬 수 있었다.
조심스런 조직화 사업을 통해 과반수 이상을 조직하는데 성공하자 곧바로 공개적인 활동에
나섰다. 2017년 11월 국회 국정감사를 계기로 열악한 처우, 특히 성범죄 위험에 노출된 채
로 영상중계를 계속 해야 하는 근로실태(상담사는 이런 경우에도 통화종료를 할 수 없게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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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있었다)를 증언하였고 최소한의 보호 조치를 공개적으로 요구하였다. 더 나아가 그 동안
의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보호조치의 미흡으로 발생한 공황장애 등의 산재 문제를 제기하여
일부 피해 노동자들이 산재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렇듯 노조 활동의 성과가 대중적으로
확인될 즈음인 2018년 12월 한국정보화진흥원은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직고용 정책에 따
른다면서 KTCS 소속으로 파견 근로 중인 34명의 중계사 중 16명을 대량 해고하였다. 직접
고용을 위한 채용절차를 위해 형식적으로라도 시험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이를 통해 기존의
파견 노동자들을 대거 탈락시키는 방식으로 해고시킨 것이었다.
이런 기만적인 직접고용에 맞서 KT새노조 손말이음센터지회는 즉각 총회를 열어 전 조합원
의 중지와 결의로 하루 파업을 단행하였다. 이런 단결 투쟁의 기운에 힘입어 해고자 전원 복
직 때까지 모든 조합원들이 희생자 구제기금을 내기로 결의하였다. 이런 단결된 힘이 바탕이
되어 해고자들이 앞장서서 장애인 단체 등에의 지지 여론 호소와 내부, 외부에서의 1인 시
위, 민주당사 앞 집회, 대구 본원 항의 집회, 문용식 원장 면담 등의 투쟁을 전개하였고 몇차
례 교섭 끝에 재응시의 기회를 만들 수 있었다. 그 결과 재시험의 기회를 통해 1인을 제외
하고 해고자 모두가 복직을 쟁취하여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손말이음센
터지회 출범 당시 목표였던 직고용, 임금, 인원충원, 성범죄 노출 방지 대책 관련 대부분의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 직고용과 동시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산하 한국정보화진흥원노조에 노
조원 전원을 이관하였다. 비정규직화 정규직의 모범 사례로 제법 많은 이들로 찬사를 받은
성과였다.
<손말이음센터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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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2017년 3월경 KT스카이라이프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가 해고된 염동선, 김선호 두
청년 노동자들이 KT새노조를 찾았다. 이들은 KT스카이라이프에서 언젠가 정규직이 될 것이
라는 희망을 품고 3년 간 무선 영업 업무를 했다. 그러나 회사는 이들을 3년 동안 4번의
쪼개기 계약이라는 꼼수를 통해 오래 부려 먹었으면서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지 않은 채 멋
대로 해고시킬 수 있었다. 이들로서는 너무도 억울하지만 말 그대로 하소연할 때조차 없는
지경이었다.
KT새노조는 이들을 일단 조합원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투쟁하기로 결의하였다. 이들과 함께
1인 시위 등을 통해 불법 쪼개기 계약 문제를 계속 여론화하였지만 회사는 요지부동이었다.
2017년 5월 당시 대통령 선거의 최대 이슈는 비정규직 문제였고 이에 KT새노조는 이들 노
동자들이 쪼개기 계약으로 정규직화를 피한 꼼수 계약의 최악의 사례임을 더욱 널리 알려
나갔다. 그리고 그런 호소가 먹히면서 2017년 5월 당시 문재인 대통령 후보가 홍대 앞 청
년 유세 행사를 할 때 청년 비정규직 피해자 대표로 문재인 후보와 프리허그를 할 수 있었
다.
이를 계기로 약간의 교섭 국면을 맞이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근본적 진전은 없었다. 이에 해
고 기간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이들은 청와대 앞 1인 시위 등의 장기여론전을 꾸준히 전개함
과 동시에 공공운수노조 공무직노조 상근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며 투쟁을 이어 나갔다. 외부
에서의 정규직화 여론은 계속 높아졌지만 KT스카이라이프 내부 여론은 호의적이지 않았고
이 사이에서 교섭의 진전은 없었다. 민주노총 언론노조 소속의 KT스카이라이프 노조는 후원
금 연대 등의 노력을 하기도 했지만, 2018년 초 정규직 복직 협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정규직 젊은 노조원 중심으로 “불공정 복직 반대” 연판장이 돌아다니는 등 배척 분위기가 역
력했다. 이러한 내부 배척 분위기와 외부에서의 투쟁에 따른 압력이 교차하던 가운데 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