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퇴진 요구 직면한 황창규 KT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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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진 요구 직면한 황창규 KT 회장

 
 

황창규 KT 회장이 3월24일 서울 우면동 KT연구개발센터에서 열린 정기주주총회에서 안건을 통과시키고 있다. / KT제공

지난 3월 24일 KT의 올해 첫 주주총회가 열린 서울 우면동 KT연구개발센터 앞은 아침 일찍부터 ‘전운’이 감돌았다. 이날 주총은 KTCEO추천위원회가 차기 회장으로 단독 추천한 황창규 KT 회장의 연임 여부를 결정하는 자리였다. 이미 황 회장의 연임이 무난하게 승인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인 가운데 그간 황 회장의 연임에 반대해온 KT새노조 측 조합원 20여명도 주총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총이 시작되고 제1안건으로 황 회장 연임이 표결에 오르자 KT새노조는 고성을 지르며 격렬하게 연임 반대를 외쳤다. 이들은 “최순실 게이트 ‘부역자’인 황 회장에게 또 회사를 맡길 순 없다”고 주장했고, 주총장은 일순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의사진행에 나선 황 회장은 연신 “정숙해달라”고 외치며 진땀을 뺐다. 경비원들이 KT새노조 조합원을 모두 끌어낸 후에야 표결이 진행됐다. 결과는 예상대로 만장일치. 이변은 없었다. 한껏 여유로워진 표정으로 연단에 오른 황 회장은 “2019년 세계 최초 5G 상용화와 빅데이터·인공지능·플랫폼 사업 등을 융합해 성과를 창출하겠다”며 포부를 밝혔다. 이날부로 황 회장은 2020년 정기 주총까지 3년간 더 KT를 이끌게 됐다.

KT새노조는 5월 25일에도 성명을 내 황 회장의 퇴진을 요구 중이다. KTKT새노조의 주장을 ‘소란’쯤으로 치부했다. KT 관계자는 “직원 대다수인 1만8000여명이 가입 중인 KT노조(1노조)는 황 회장의 연임에 찬성했다”며 “KT새노조의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황 회장의 연임에 반대한 건 KT새노조뿐만이 아니다. 참여연대 등 여러 시민단체를 비롯해 국민연금 노조도, 정의당도 황 회장의 연임을 반대하고 있다. 연임 반대 이유는 역시 공통적으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적극 협조한 황 회장에게는 국민이 주인인 국민연금이 최대주주로 있는 KT를 이끌 자격 자체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서도 KT 관계자는 “이미 여러 차례 황 회장이 ‘회사를 위한 결정이었다’며 해명한 사안들”이라며 정리가 됐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KT는 게이트의 ‘본산’격인 미르재단에 11억원, K스포츠재단에 7억원을 각각 기부했다. 오너가 있는 웬만한 대기업보다도 상당히 많은 금액이다. 최순실씨가 실소유주인 광고 대행회사 플레이그라운드에는 회사 내부규정을 위반해가면서까지 68억원의 광고를 몰아줬고, 이 일을 진행하기 위해 최순실씨가 추천한 측근을 담당 고위임원(전무급)으로 채용했다. 이상은 최순실씨의 측근인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의 재판을 통해 확인된 내용들이다. 최씨는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고, 차 전 단장의 경우 검찰로부터 징역 5년을 구형받고 최종 선고만을 기다리고 있다. 황 회장을 향한 ‘부역자’ 비판도 이 같은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

그럼 KT 주장대로 게이트 연루 의혹은 황 회장의 해명으로 모두 해소됐고, 이에 따라 연임에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일까. 결론은 그렇지 않다. 황 회장이 게이트와 관련해서 정말 ‘아무 문제도 없는지’ 여부는 사법기관의 판단을 받아봐야 하기 때문이다.

시민단체인 약탈경제반대행동과 KT새노조는 2016년 10월 황 회장을 횡령과 배임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KT전국민주동지회와 KT노동인권센터도 11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제3자 뇌물제공 및 업무상배임죄) 위반 혐의로 박근혜 전 대통령과 황 회장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KT새노조는 올 1월에는 KT 이사회 전체를 업무상 횡령 혐의로 특검에 고발하기도 했다.

황 회장과 KT 이사회 관련 고발건들은 특검 종료 후 현재 중앙지검 형사 8부에 그대로 배정돼 있는 상태다. KT노동인권센터 관계자는 “검찰로부터 중간에 담당검사가 변경됐다는 연락만 받았지 불기소나 각하 처분 등 다른 결정을 내렸다고 통보받은 바 없다”고 밝혔다. 이는 검찰이 아직 고발건들에 대한 수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KT는 게이트와 관련된 황 회장 리스크에 대해 국내에서는 “문제없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과 달리 해외 시장에선 “리스크가 맞다”며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KT가 4월 28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제출한 ‘2016년 사업보고서’ 내용을 보면 ‘투자위험 요소’에 황 회장 리스크를 명시하고 있다. KT는 뉴욕 증시에 상장돼 있기 때문에 매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보고서를 내야 한다. 보고서에 KT는 황 회장이 관련된 게이트 문제를 열거한 뒤 “기소되지는 않았지만 법적 절차 등이 진행될 가능성이 있어 사업, 평판, 주가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이에 비해 KT는 5월 15일 국내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공시한 ‘분기보고서(3월 기준)’에는 황 회장 관련 리스크를 그 어디에도 적어놓지 않았다.

한 재계 관계자는 “공시 관련 기준이 까다로운 미국에 내는 보고서에 황 회장 문제를 거론한 것을 볼 때 내부적으로 황 회장에 대한 고발건 등을 리스크로 보고 있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고 밝혔다.

검찰이 언제 황 회장과 KT 이사회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할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재벌개혁과 적폐청산을 내걸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서 황 회장건을 검찰이 유야무야 넘길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5월 11일 청와대의 새 비서진과의 오찬에서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특검 수사가 기간 연장되지 않고 검찰 수사로 넘어간 것에 대해 국민들이 걱정하고 있다”며 “검찰이 제대로 수사할 수 있도록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만 해도 새 지검장으로 윤석열 전 특검 수사팀장이 부임했다. 특검은 과거 수사를 종료하면서 “재벌 관련 수사는 시간이 부족해 못했다”고 밝히며 아쉬움을 나타낸 바 있다. 신임 윤 지검장 역시 게이트에 연루된 여러 기업 관련 수사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 대통령마저 추가수사의 필요성을 강조한 터라 윤 지검장이 황 회장에 대해 적극적으로 수사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변수가 없진 않다. KT의 경우 민영기업임에도 ‘정권에 따라 회장이 바뀐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기업이다. 과거 남중수 회장, 이석채 회장 등도 모두 연임에 성공했지만 개인비리나 배임 등의 혐의를 받다가 연임 초기 중도하차했다. 낙마한 회장 대신 취임한 신임 회장을 향해서는 “정권과 코드가 맞는 인물”이라는 수군거림이 늘 뒤따랐다. 황 회장이 연임에 성공하자 재계에서 나온 반응 중 하나 역시 “새 정권에서 계속 버틸 수 있겠나”라는 우려였다.

이 때문에 검찰이 황 회장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할 경우 과거 선례처럼 KT 회장에 대한 표적수사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더욱이 문재인 정부는 적폐청산의 과제로 정경유착 근절을 선언한 상태다. KT에 대한 검찰 수사가 정치적으로 비쳐질 경우 과연 새 정부가 정경유착을 근절할 의지가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비판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전임 이석채 회장의 사례도 검찰 수사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대법원은 5월 30일 특가법상 횡령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 전 회장의 상고심에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이 전 회장에 대한 최종판결이 무죄로 나올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이 전 회장을 기소한 검찰을 향해 비판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며 “이미 직전 회장에 대한 수사에서 별다른 성과를 못낸 검찰이 같은 기업의 현직 회장에 대해 강도 높은 수사를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KT는 이튿날인 5월 31일 공시를 통해 이 전 회장에 대한 대법 판결 소식을 알렸다.

KT의 한 고위 관계자는 “황 회장은 최씨가 동계스포츠재단을 통해 요구해온 스키단 창단, 더블루K 연구용역 제안 등은 거절한 바 있다”며 “황 회장이 최씨에게 어쩔 수 없이 협조한 사실만 너무 부각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황 회장은 취임 후 개선된 실적을 앞세워 주변의 퇴진 요구에 맞서 ‘수성’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KT는 올 1분기 매출 5조6117억원, 영업이익 4170억원의 실적을 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매출은 1.8%, 영업이익은 8.3%씩 각각 늘었다. 황 회장은 취임 첫 해인 2014년엔 대규모 명예퇴직 등의 여파로 4605억원의 적자를 냈지만 2015년에는 1조2929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흑자전환했고, 지난해엔 1조44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내 2011년 이후 최대 실적을 올렸다. 1분기 영업이익이 4000억원을 넘은 것 역시 5년 만이다. 노동계에서는 “대규모 명예퇴직에 따른 인건비 절감효과”라고 평가절하하는 시각도 있지만 수치상으로 황 회장 취임 후 KT의 실적이 개선된 것은 맞다.

황 회장이 주변의 비판과 검찰 수사의 파고를 넘어 KT를 이끌 경우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가입 여부가 황 회장의 경영행보 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전망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국민연금과 같은 기관투자가들에 대한 행동원칙을 규정한 자율규범(가이드라인)이다. 기관투자가가 공익적 가치를 추구해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해 기업 대주주의 전횡을 막고, 계열사에 대한 편법 지원 등 불투명한 경영을 견제해야 한다는 게 스튜어드십 코드의 취지다.

국민연금은 KT의 지분 10.46%를 보유 중인 최대주주다. 최대주주임에도 그간은 기업 경영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KT의 경영문제에 간섭한 적이 없다. 현재 사내이사 3명, 사외이사 8명 등 11명으로 구성된 KT 이사회에도 국민연금이 추천한 이사는 한 명도 없다.

이에 비해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에 가입할 경우 보다 적극적인 경영개입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사회만 해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스튜어드십 코드에 가입한 국민연금은 현행 이사회에 최대주주의 입장을 대변할 이사 선임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문 대통령은 이미 경제공약을 통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약속한 바 있다. 이 때문에 국내 최대 기관투자가이자 공공기관인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에 가입하는 건 이제 시간문제로 해석되고 있다. 국민연금은 최근 스튜어드십 코드 가입에 따른 영향 등을 전망하기 위해 외부 연구용역을 발주한 상태다. 이밖에도 문 대통령이 공약한 상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이사회를 향해 노조원을 대표하는 직능이사 선임 등 추가적인 요구가 내부적으로 잇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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