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기자의 시각] 홀로 당당한 황창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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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백건 사회부 기자 | 2017/03/30 03:13

조백건 사회부 기자

28일 서울중앙지법 417호에서 열린 최순실·안종범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황창규 KT 회장은 거침이 없었다. 그는 청와대에서 인사 청탁 등 부당한 압박을 받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대부분 “네” “그렇다”고 짧게 답했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을 향한 불만을 직설적으로 쏟아내기도 했다. 황 회장은 박 전 대통령이 2016년 2월 독대(獨對) 때 최순실씨 회사 관련 사업 제안서 2건을 자기에게 건넨 일을 언급하며 “제안서가 너무나 터무니없고 모든 것이 수준 이하였다”고 했다. 그는 2015년 안 전 수석의 요구로 최순실씨 측근인 이동수·신혜성씨를 KT 임원으로 채용하고 그해 말 회사 광고 발주를 총괄하는 자리로 옮겨준 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청와대 수석이 사기업인 KT에 (특정인) 채용과 보직 변경을 요구한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며 “안 전 수석의 (청탁) 전화를 받고 ‘이게 도대체 뭐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다”고 말했다.

황 회장의 당당한 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헌재의 탄핵 심판이 진행 중이던 지난 1월에도 박 전 대통령 측 변호인단이 자기를 증인으로 신청하자 헌재에 ‘나를 부르면 피청구인(박 전 대통령)에게 불리할 것’이란 내용의 의견서를 보냈다.

 

황창규 KT 회장이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비선 실세 최순실 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의 이런 모습에서 지난해 11월 20일 검찰이 최순실씨 등을 재판에 넘기면서 공개한 공소장 내용이 떠올랐다. 31쪽짜리 공소장 중 KT 관련 부분은 3쪽에 달했다. 대한민국 대통령과 청와대 실세 수석이 한 기업의 채용과 광고 사업에까지 개입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정부가 단 한 주도 주식이 없는 민간 기업 KT가 이런 부당한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더 충격적이었다. 황 회장은 청와대 지시를 받아 ‘최순실의 사람들’에게 광고를 맡긴 장본인이다. 이렇게 해서 2016년 한 해에만 최씨가 주인인 광고사 플레이그라운드는 KT 광고를 68억원어치 따냈다.

황 회장도 다른 대기업 총수들처럼 청와대의 뜻을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황 회장과 다른 대기업 총수들의 가장 큰 차이는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이후 보여준 모습이다. 삼성·롯데·SK·한화 오너들은 작년 12월 국회 인사 청문회 등에서 “청와대가 강요해 어쩔 수 없었다”면서도 하나같이 “국민께 송구하다”고 머리를 숙였다. 그들이 이끄는 기업이 어떤 이유에서건 논란의 한복판에 서게 된 것을 공개적으로 사과한 것이다.

반면 황 회장은 홀로 당당하다. 그의 말대로 청와대가 비상식적이고 수준 이하 요구를 했다면 그 요구 대부분을 받아들여 KT를 비상식적으로 굴러가게 한 그의 잘못도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도 황 회장은 줄곧 권력의 부당한 압력 행사를 비난하기만 할 뿐 자신의 책임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다. KT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직원 2만3000명은 그런 황 회장을 어떻게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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