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희망퇴직 탈을 쓴 구조조정 – 주간경향

ㆍ인력 감축 수단으로 ‘대량고용변동’ 남용… 정리해고보다 더 많이 회사 떠나

김진수 과장(37·가명)이 서울에서 경남 거제로 온 것도 석 달이 다 돼간다. 대우조선해양에 다니는 김 과장은 해양플랜트 분야 설계·연구인력을 중심으로 서울에 있던 본사에서 거제로 이동한 280여명 중의 한 명이다. 부서가 거제로 이동하기 전부터 서울과 수도권에 연고가 있는 직원들을 중심으로 회사를 옮겨야 하는지 고민하는 목소리가 심심찮게 들려왔다. 김 과장은 “막상 거제로 가면 (회사를) 나갈 사람은 다 나가고 그래도 회사에 남을 사람들만 있겠거니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고 말했다.

편법으로 연간 상시 구조조정
특히 20·30대 젊은 사원들을 중심으로 거제 이동 이후 회사를 그만두거나 언제라도 떠날 준비를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점심시간이나 휴식시간마다 채용공고가 뜬 다른 회사에 대해 얘기들을 하는데, 월급이 크게 줄어든 데다 특히 서울에서 거제로 온 게 ‘언제든 나가려면 나가라’는 뜻으로 읽히는 상황이라 분위기가 뒤숭숭하다”고 말하는 김 과장 역시 이직을 고민 중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이미 부장급 이상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위기를 겪고 있는 같은 조선업종의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도 다르지 않았다. 창사 이래 처음으로 생산직에 대해서도 희망퇴직을 실시한 현대중공업은 과장급 이상에게 희망퇴직 신청을 받아 올해 6월까지 약 2000명이 회사를 떠났다. 대리와 사원급 직원들도 희망하면 퇴직을 할 수 있었다. 삼성중공업 역시 6월까지 생산직과 사무직을 합해 1500여명의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고, 언제든 희망퇴직 신청을 할 수 있도록 유지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시내 한 빌딩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야근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빌딩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야근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명예·희망퇴직을 신청받거나 노동환경의 막대한 변화를 통해 직원들이 제발로 회사를 떠나게 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해고 대신 퇴직 또는 이직을 유도해 인력을 구조조정하는 셈이다. 정리해고가 ‘긴박한 경영상의 위기’ 때문에 실시하는 해고여서, 회사가 해고 전에 해고회피 노력을 다해야 하고, 공정한 기준에 따라 대상자를 선정해야 하는 등 조건이 까다로운 데 비해 희망퇴직 등으로 퇴사를 유도하는 것은 퇴사 직원의 규모가 일정 이상일 경우 한 달 전 고용노동부에 ‘대량고용변동’ 신고만 하면 문제가 없다. 겉만 봐서는 희망자에게 위로금을 더 주고 퇴직을 실시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게 압박하는 여러 방법들이 동원되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3년간 기업들의 정리해고가 증가하고 있지만 그보다 더 큰 규모의 인력 구조조정이 대량고용변동이라는 명목으로 사실상 아무런 통제 없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한정애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2014년부터 올해 8월까지의 대량고용변동 신고내역을 보면 정리해고와 대량고용변동 모두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양상이 발견됐다. 특히 대량고용변동은 대기업들의 고용조정 수단으로 남용되는 사례가 많았다.

대기업 사업장 대량고용변동 많아
기업들의 정리해고는 2013년 32곳 929명에서, 2014년 46곳 1429명, 2015년 39곳 1948명, 올해는 8월까지 25곳 999명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대량고용조정 규모는 정리해고 규모보다 훨씬 크다. 2014년 27곳 1만2923명이었던 대량고용변동 규모는 2015년 50곳으로 사업장 수는 늘었지만 인원은 6026명으로 줄었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는 8월까지만 74곳 5791명의 해고가 예고된 상태다. 특히 삼성과 포스코, 현대자동차, 한화, 두산 등 대기업들에서 경영난을 이유로 퇴직하는 직원들의 수가 많았다. 지난해 창사 이래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한 포스코는 올해 연말까지 400명을 구조조정하는 것을 비롯해 포스코건설(520명)과 포스코엔지니어링(600명) 등 전 계열사가 대규모 고용조정에 참여한다.

금융업종에서도 인력 구조조정의 규모는 작지 않았다. 2014년부터 올해 8월까지 11곳 금융사에서 3076명을 감원했다. 한국씨티은행이 600명, 한화생명보험 543명, 메리츠화재해상보험 420명, 삼성증권이 361명을 감원했다. 그밖에 현대증권, 알리안츠생명보험, ING생명보험, HMC투자증권 등의 금융사에서도 각 200명 안팎의 인원을 감축했다.

대기업 사업장에서는 대량고용변동을 신고한 곳이 많았던 데 비해 정리해고를 단행한 사업장은 중소기업의 비중이 높은 편이었다. 정리해고 사업장의 업종을 보면 제조업이 61%(64곳)로 가장 많았다. 정리해고 사업장이 밝힌 가장 많은 경영난의 사유가 ‘원청의 도급·용역계약 해지’라는 점은 원청의 영향으로 하청을 받는 중소기업들에서 경영난을 겪어 정리해고에까지 나선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가장 많은 인원을 정리해고시킨 업체 역시 삼성전자 등에 휴대전화 기판을 납품하는 업체인 에스아이플렉스로, 지난해 7월 한꺼번에 350명을 정리해고시켰다.

구미공단의 한 대기업 하청 디스플레이 생산공장에서 일하다 퇴사한 정인훈씨(34)도 5개월 전 다니던 회사가 위로금 명목으로 석 달치 기본급만 얹어주며 쫓아내다시피 해 회사에서 나온 경우다. 임직원이 300명이 안 되는 사업장이다 보니 총임직원의 10분의 1이 넘는 인원이 한 달 안에 퇴직할 경우 대량고용변동 신고를 하고 퇴직 인원에 대한 일자리 교육 등을 실시해야 했다. 하지만 대량고용변동 미신고 시 처벌 사례가 거의 없고 적발되더라도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로 끝나기 때문에 상당수 기업은 신고를 하지 않는 실정이다. 정씨가 다니던 회사도 줄잡아 40여명이 퇴사하는데도 직업교육 등 최소한의 지원방안조차 없었고, 정씨와 동료들은 자칫하면 실업급여마저도 받지 못할 뻔했다. 정씨는 “구미공단 전체가 다 감축 분위기라 전혀 다른 일자리를 잡아야 했지만, 나는 그래도 실업급여로라도 버틸 수 있었지만 더 영세한 데선 밀린 월급도 다 못 받고 나온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까다로운 요건의 정리해고가 늘어나는 이면에 편법적인 희망퇴직 등을 유도하며 연간 상시 고용조정이 이뤄지고 있지만 노동당국은 실태조차 제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신입사원까지 포함하는 대규모 희망퇴직을 실시한 두산의 경우에도 노동부에 신고하기 전 이미 두 차례에 걸쳐 76명, 218명이 희망퇴직했지만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KT 역시 직원 8300여명을 대거 퇴직시켰을 때 노동부 신고사항인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가 과태료를 낸 바 있다.

한정애 의원은 “경영의 실패를 근로자에게 전가하는 기업 오너와 경영자들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바로잡기 위해 정부와 고용부의 실질적인 감독이 필요하다”며 “이러한 대량해고가 나날이 늘어나면서 직원들이 고용불안과 생계위협을 상시적으로 겪고 있으므로 고용노동부가 정리해고는 물론 실질적으로 해고나 마찬가지인 희망퇴직에 대해서도 기업들이 자구노력을 취한 다음 실시하는지 철저하게 감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원문보기: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610041655061&code=115#csidxcfc8d6a2ac2ba7c967100bba57ed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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