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대표이사 회장 황창규)가 임원에서 사원까지 직급별 맞춤 부채, 일명 ‘열정부채’를 제작해 전사에 배포했다. 임원을 왕에 비유하고, 실적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KT 내부에서는 “충성심을 강조하고 실적을 압박하는 기업문화의 단면을 드러내는 황당한 계급부채”라는 반응이 나온다.
KT 경영지원부문 기업문화팀은 최근 임원, 부장, 지점장, 팀장, 직원용 부채 9종 포함 총 13종의 부채를 제작해 28일부터 배포한다고 사내 전산망에 공지했다. KT는 이를 “각 직급별 특성을 나타낼 수 있는 여러 재미있는 디자인과 메시지가 담겨져 있는 열정부채”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팀장께서는, 각 팀원에게 어울리는 부채를 수여하고, 직원들은 부채 뒷면에 각자의 이름을 쓰고 각오를 다집시다”라고 안내했다.
임원용 부채는 임원을 왕에 비유하는 이미지에 ‘임파워먼트 넘버원’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임파워먼트(empowerment)는 관리자가 직원들에게 필요한 권한과 동기를 부여하는 것을 뜻한다. KT는 팀장, 지점장, 부장 부채에는 군인 이미지 등을 활용했고 “나를 따르라!” “실적은 사랑입니다” 따위의 문구를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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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가 28일부터 전사에 배포하기 시작한 열정부채 이미지 (사진=KT새노조.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직원용으로 보이는 부채는 별도의 사람 이미지 없이 문구로 구성돼 있는 게 대다수다. “필생즉사 팔사즉생 일당백 목숨걸고 일한다” “마이더스의 손 하면 된다 내가 손대면 무조건 노다지” “무한긍정맨 내 사전에 NO란 없다” “상사에게 인정받고 아내에게 사랑받는 일등 신랑감” “출근만 해도 폭발하는 미친존재감! 미존” “숨은인재 곧 모습을 드러낼테니 긴장들 하십쇼” “막내 우쭈쭈 부탁드립니다” 등이다. 부채의 뒷면에는 “나의 하루는 얼마나 열정적이었나요?”라는 문구와 함께 KT 기업이미지 옆에 이름을 적는 공간이 있다.
이를 두고 KT새노조 이해관 대변인은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열정페이가 문제가 됐던 이유는 노동자를 존중의 대상이 아닌 착취의 대상으로 봤기 때문인데, 굴지의 대기업인 KT가 임원을 임금님으로 표현하고 ‘하면 된다’는 식으로 직원들을 몰아가는 것은 발상 자체가 기업의 장래를 어둡게 한다”고 말했다. 한 현장직원은 “부채만 봐도 임원은 임금님이고 직원은 하인인데, 직원들 등골 빼먹자는 이야기로 들린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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