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leh kt, 사랑합니다 고객님”…웃음 뒤에 감춰진 눈물
2002년 민영화 이후 주기적으로 노동자 대량해고하는 KT
기사입력 2011-09-16 오후 12:10:48
30년 전 국내 최대 통신사인 KT에 입사한 정창도(가명) 씨. 20년 넘게 사무직으로 근무하면서 그가 하던 일은 IT 관련 보안 쪽 일이었다. 나름 전문가라는 자부심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자부심은 2002년, KT가 민영화된 이후 사라졌다. 20년 이상 장기근속자라는 이유로 CP(인사 고가에서 C등급을 받은 사람) 프로그램 대상자로 분류됐다.
고생이 시작됐다. 아침에 출근하면 각종 회의에 불려 가 ‘왜 아직도 회사를 다니느냐’며 망신을 당했다. 자정에 상사가 비상을 걸어 출근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래도 가족 때문에 버텼다. 그렇게 버티자 회사는 사무직에서 현장으로 정 씨를 쫓아냈다.
전기선을 고치는 일부터, 전주 설치하 는 일까지 다양한 일을 했다. 한 마디로 막노동이었다. 꾹 참고 일했다. 그렇게 거기 일이 적응할 만하니 회사는 다시 고장 난 전화기를 고치는 부서로 발령을 냈다. 이를 악물고 버텼다. 당시 부서에서는 하루에 세 차례씩 관리자와 면담을 했다. 내용은 회사를 그만두라는 거였다. 받아들이지 않았다.
▲ 1998년, 정부의 공기업 매각발표 이후 처음으로 한국통신 노조원들이 국민회의 여의도당사 앞에서 ‘한국통신 해외매각 반대 및 일방적 구조조정 분쇄 결의대회’를 열어 반대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싫으면 말고 식으로 나가라는 너무 억울하다”
몸이 힘들고 직장 상사가 괴롭히는 것도 힘든 일이었지만 무엇보다 힘든 건 직장 동료가 자신을 ‘왕따’시키는 거였다. 정 씨와 대화를 나누거나 점심 약속을 하는 직장 동료에게 직장 상사는 우회적으로 압력을 줬다. 부서 회식이 있어도 정 씨는 알지 못해 참석하지도 못했다.
그러던 2008년, 회사에서는 정 씨에게 새로 만든 협력사로 갈 것을 종용했다. 당시 KT는 민원처리업무(VOC)를 외주화하며 정규직 550여 명을 협력사로 내보냈다. 2009년 다시 협력사는 한국인포서비스(KOIS)·한국인포데이타(KOID)와 각각 통합돼 케이티스(KTis)·케이티씨에스(KTcs)로 새로 출범하며 KT 자회사로 편입됐다.
민원처리업무는 전화번호 ‘100’번으로 걸려온 전화에서 요금 이의 등 민원이 발생하면 두 번째로 고객과 상담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 업무가 자회사로 옮겨지자 관련 일을 하던 직원들도 계약직으로 일터를 옮겼다. 조건은 3년간 고용보장, 이전 급여 70% 지급, 인센티브 지급 등이었다.
회 사는 안 갈 거면 퇴사하라고 압박했다. 고민을 하다 기간제법에 의하면 2년 이상 근무할 경우 고용이 보장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를 수락했다. 일을 하면서 회사 상사는 정 씨에게 ‘열심히 일하면 고용을 보장하겠다’고 수차례 약속을 했다. 하지만 정작 3년이 되는 9월 30일이 다가오자 문제가 발생했다. KT 본사는 정 씨가 맡은 민원처리업무를 다시 가져가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회사에 남겨진 정 씨는 자연히 퇴사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 이미 자회사에서는 업무가 없어진 것과 3년 계약기간 만료를 이유로 퇴사할 것을 종용하고 있다. 만약 퇴사하지 않으려면 ‘100번 콜상담 센터’에서 일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콜상담 센터는 20대도 6개월을 채 버티지 못하는 업무다. 50대인 정 씨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 씨는 15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배운터에서 열린 KT계열사 노동인권 실태 발표 및 증언대회에 참석해 “일할 수만 있다면 다행이라는 마음으로 지금껏 KT에서 일해왔다”며 “그런데 이제와서 ‘싫으면 말고’ 식으로 나가라고 하니 너무 억울하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KT, 대규모 정리해고 뒤 대규모 주식배당
KT가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정책에 따라 민영화된 지 9년이 지났다. 공공부문의 방만하고 비효율적인 운영을 개선하고자 진행한 민영화. 하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못하다.
KT는 민영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단기 수익 중심의 투자에 주력해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최저가 입찰제를 통해 ‘우수한 장비‘보다는 ‘싼 장비’ 중심으로 구매 패턴을 바꾸기도 했다. 장기적 체질 강화와는 반대로 눈앞에 수익을 위한 정책을 펼쳐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물론 이 때문에 전체의 50%에 가까운 외국인 주주들은 엄청난 주식 배당금을 받아왔다. 일례로 2010년 당기 순이익 1조1719억 원 중 배당 총액 5862억 중 외국인 배당이 3083억 원이었다.
경영진도 마찬가지다. 민영화 이전 14억5000만 원이던 이사의 보수한도는 민영화 다음해인 2003년 23억4000만 원으로 61.3% 증가했다. 이후에도 이것은 꾸준히 증가해왔다. 반면 민영화 직후인 2003년에는 5505명의 노동자가 해고됐다.
또한 2009년 45억 원이던 보수한도는 5992명의 노동자가 해고된 후, 65억 원(44.4%)으로 급격히 뛰었다. 같은 기간 181억2000만 원이던 상무급 이상 경영진 보수도 405억3800만 원으로 123.7%가 인상됐다.
점심시간이 평균 20분, 기본급은 90만 원
반면 민영화 이후 노동자의 삶은 척박하다. 특히 KT 자회사 케이티스(KTIS)에서 100번 콜상담 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처우는 심각한 수준이다. 최은실 노무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점심시간으로 평균 20분을 사용한다. 밀려드는 민원 전화에 비해 인력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대부분 노동자들은 주먹밥이나 과자로 점심을 때우기 일쑤다. 점심시간외 근무시간 중에는 화장실도 맘대로 갈 수 없다. 업부 과부하가 걸릴 수도 있기에 팀장 허락을 받고 다녀와야 한다.
과도한 일일 콜 목표량도 문제다. 케이티스는 일일콜 목표량 110콜을 채우지 못할 경우 사유서를 제출하도록 한다. 몸이 아파 조퇴를 하려면 42콜 이상 처리해야만 하기 때문에 정작 오후 2시 이후에나 조퇴가 가능하다. 일단 출근하면 42콜 이상은 처리해야 한다.
하루 종일 컴퓨터를 보면서 일하다 보니 목 관절이나 어깨가 아프고 근육통도 자주 겪는다. 헤드폰을 끼고 있어 난청에다 소화불량, 만성위염은 늘 끼고 산다. 늘 밝게 고객을 맞아야 하기 때문에 우울 증세를 호소하는 직원도 상당수다.
그러나 기본급은 최저임금인 90만 원, 나머지는 가점을 통한 인센티브를 통해 추가로 받는다. 다른 부서에 업무를 이관해도 안 되고, 오처리를 해도 안 된다. 고객에게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도 안 된다. 이와같은 10여 가지 평가 항목에 따라 평가를 받는다. 매달 평가가 이뤄지며 매월 임금에 ‘업적수당’으로 반영된다.
콜 목표량을 못 채우거나 아파서 결근하거나 무단결근할 경우 모두 사유서 제출과 감점처리로 당월 임금에 반영된다. 그렇다보니 이직률도 높다. 신규상담사의 60% 이상이 6개월 이내에 퇴사한다.
“VOC업무 위탁행위는 KT 직원 정리하기 위한 방편”
권영국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KT는 경영방침으로 정규직원 500여 명에게 ‘3년간 고용보장, 현 임금의 70% 보장’을 조건으로 자회사로의 전직을 실시했다”며 “KT는 이들에게 업무를 부여하기 위해 결과적으로는 콜 법인인 자회사 케이티스와 케이티씨에스에 플라자 업무 및 VOC 업무를 위탁했다”고 주장했다.
권 변호사는 “하지만 전직 시행 시점으로부터 3년이 가까워오자 KT는 케이티스와 케이티씨에스로부터 VOC업무를 회수하고 전직 직원들의 고용보장기간 만료 및 담당할 업무의 소멸을 이유로 사직을 종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권 변호사는 “사용자가 3년간 고용을 보장하기로 약정하고 2년을 초과해 근로자를 사용했다면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 간주하는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조 제2항에 따라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되었고, 이로 인해 정당한 이유 없이는 해고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권 변호사는 “KT의 VOC업무 위탁행위는 KT 직원을 정리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뤄진 것으로 일종의 가장행위였다”며 “만일 자회사가 VOC 업무의 소멸을 이유로 전적자들을 해고한다면 이는 정당성 없는 해고로서 위법하다고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