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한 통 놓는 데 600만 원을 내라고 한다. 통지가 온 지 근 한 달 된다. KT(구 한국통신)에 전화를 신청한 것은 올 봄이었고 10월 초쯤 “이전신청 민원 처리 중”이란 메시지를 받았다. 내가 KT에 전화해 “왜 이리 느리게 처리하느냐”고 화를 냈고, 11월 말 600만 원을 내면 전화를 가설해 주겠다는 통지문을 받았다.
나는 기존 전화선로와 400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산다. 고사리 등 임산물을 재배하는 나의 집은 마을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다. 3년 전부터 농장에 흙집을 짓고 마을에서 이사를 했다. 그 때 전화 이전 신청을 했더니 KT는 3000만 원 견적을 내게 보냈다. 산길을 따라서 내 집까지 전주를 심어야 하니 그렇게 견적이 나온다고 했다.
전화 한 통 놓는 데 600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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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T가 보낸 전화가설 청구서 KT는 농촌주민에게 전화한통 비용으로 600만원을 청구했다. (표의 금액단위는 천원) |
ⓒ 장준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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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을 전화 없이 외딴 집에서 살았다.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고 이동모뎀(핸드폰과 같은 요금)으로 인터넷을 했다. 그러나 핸드폰도 잘 안 터지고 인터넷은 메일 하나 전송하기가 어려웠다. 한 번씩 하려면 복장이 터졌다. 인터넷으로 할 일은 모닥끄려 가끔 소재지에 나가서 했다. 그런데도 요금은 매달 두 배로 들었다.
나의 농사가 특용품목이라 공판장으로 출하될 성질이 아니다. 인터넷으로 홍보하고 소비자를 만나야 할 처지다. 그래서 홈페이지까지 만들었다. 그러나 무용지물로 방치되어 있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올 봄에 다시 이전 신청을 한 것이다.
며칠 전 큰 맘 먹고 군소재지 고흥 KT사무실을 찾아갔다. 해당 부서 직원들은 전주가설 일로 현장에 나가고 없어 지사장 면담을 했다.
“촌에서 전화 한 통 놓는 데 600만 원을 내야 한다는 것은 너무하지 않습니까?”
“고객님 경우를 조건부가설지역이라고 하는데 기존 회선과 멀어 비용을 고객이 부담해야 합니다.”
한전 전신주가 지나가는데도 전화선 못 딴다는 KT
지사장의 답변이다. 이윤추구가 목적인 민간기업 KT가 그 비용을 부담할 수 없다고 했다. KT본사 지침이라 지사장 맘대로 할 수 없다고 했다. “저희 집까지 한국전력 전신주가 놓여 있습니다. 그 전신주를 타고 전화선만 연결하면 비용은 그렇게 많이 들지 않을 겁니다”라고 다시 사정했다.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한국전력 전신주에 저희 KT회선을 이용하려면 한전에 이용료를 부과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불가하다고 했다.
“저희 집에서 보이는 곳에 있는 한 농장에 한전주를 타고 전화선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KT전주는 낮고 한전주는 높기 때문에 농촌이나 산간지역에서는 한전주를 이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다고 생각합니다.”
“아, 그 농장은 옛날부터 전화가 들어갔던 곳입니다. 새로 바뀐 농장주가 수년 전에 총리실로 민원을 내서 조건부가설지역이 아니라는 결론으로 한전주를 통해 다시 깐 곳입니다.”
지사장은 그 경우와 비교할 수 없다고 했다. 옛날에는 가끔 한전주를 타고 한국통신 회선이 지나갈 수 있었는데 몇 년 전 통신사가 경쟁하면서부터 KT가 한전주를 이용하려면 반드시 이용료를 내라고 한다는 것이다.
과연 듣고 보니 이해 못할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어려운 농촌민이 전화 한통 가설에 600만 원을 내야 합니까?” 나는 힘없이 같은 말을 했다. 지사장은 “과거 한국통신 공사 시절이면 가능했겠지만 민영화된 KT직원으로서 회사 지침을 어기고 어찌할 수 없다”고 했다.
기가 차는 일이다. 돌아오는 길에 왜 그렇게 화가 나는지, 전신주만 자꾸 눈에 들어왔다. 곳곳의 한전 전신주에 전화선도 케이블선들도 함께 걸려 있었다. 그런데 마을과 떨어진 개인 농가는 전신주에 전기선 딸랑 하나 지나간다. 그 옆으로 별도로 전화 전신주를 일일이 심는다는 것이 얼마나 불합리하고 낭비인가.
“국가나 정치인들은 뭐 할라고 있는 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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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농장 한전 전신주 농장의 전신주에는 전기선 하나 지나간다. KT는 이 전신주 옆에 새로 전신주를 일일이 심어 전화선을 연결하겠다고 한다. |
ⓒ 장준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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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 소재지 전신주 면 소재지 전신주에는 전기선, 전화선, 케이블선 등 여러개의 전선이 연결되어 있다. |
ⓒ 장준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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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그 비용 수백만 원을 농민이 물어내야 전화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나라다. 대기업들 이익창출만 우선이고 서민들은 최소한의 복지도 너무 비싼 갑갑한 세상이다.
“국가나 정치인들은 뭐할라고 있는 거여. 기업들이 알아서 다 하제. 대통령도 집권당도 입만 열면 서민을 위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이것이 뭐여” 혼자 힘만 빠지게 투덜거렸다. 위로받을 데도 없어 괜히 비슷한 처지에 있는 후배에게 전화해 봤다. 마을과 200m 조금 더 된 곳에 하우스 농사를 하면서 사는 농민이다.
“3년 전인가 300만 원 내라고 해서 아직 전화 없이 삽니다.”
“자네도 한전주는 들어오잖아? 한전주 타고 깔아주면 얼마 안 들 텐데…”
“그런께 말이요. 애들 인터넷도 못하고 숙제도 못 도와주고 죽겄어요.”
촌에는 마을과 떨어져 축사 하우스 특용작물을 재배하며 사는 주민이 상당수다. 이들도 인터넷으로 정보도 얻고 소통도 하고 아이들 숙제도 도와주고 해야 한다. 폭죽만 쏴댄다고 희망의 새해가 오는 것이 아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으로 바꿔야만 서민들도 농민들도 웃고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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