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이 정리 해고자들을 복직시키라는 국회의 권고를 받아들이겠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5차례에 걸친 희망버스가 빚어낸 매우 귀중한 성과다. 조남호 회장이 밝힌 내용은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지만 기업 차원에서 정리해고자 복직을 수용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
그런데 정리해고자 복직 소식을 들으면서도 마음 한쪽이 편하지만은 않다. 소중한 목숨을 담보로 결사적인 투쟁을 벌이고, 전국의 노동자 시민들이 호소하고서야 1년, 2년 미뤄진 복직 약속을 받아내는 현실이 답답하다. 그나마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정리해고는 언론의 조명이라도 받지만 중소·영세 비정규 노동자들 현실은 주목받지도 못한다.
지난 3일 한 노동자가 전소된 차량 안에서 형체도 알아보기 어려운 상태로 발견됐다. 그분은 ‘통신재벌’ KT의 자회사에서 일하던 노동자였다. ‘통신재벌’인 KT가 정규직들을 강제로 퇴직시키면서 고객업무 분야를 자회사로 분리하면서 만든 자회사가 KTis, KTcs다. KT 정규직으로 일했던 노동자들은 2년간 고용을 보장받는 대신 비정규직(기간제 계약직)으로 일하는 조건으로 희망퇴직을 선택했다. 그리고 마침내 2년이 지났다. 그러자 KT에서는 고객업무 분야를 다시 자기들이 하겠다며 업무 일부를 회수했다. 그리고 2년을 일한 노동자들에게 약속한 기간이 되었으니 위로금을 받고 퇴직하라고 한다. 그게 싫으면 콜 센터로 가서 일하라고 통보하고 있다.
외주 자회사로 옮기면서 월급이 반 토막 났던 노동자들은 또다시 반 토막 난 월급이라도 받고 일해야 하는 처참한 지경이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노조를 만들었지만(희망연대노조), KT의 반응은 차갑기만 했다. 이에 답답한 마음을 하소연할 길 없었던 KTcs 노조 지부장은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이 얼마나 참혹한 현실인가. 한진중공업에 청춘을 바쳤던 김진숙 지도위원은 85미터 위 크레인에서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했지만 ‘또 다른 김진숙’인 KT 자회사의 노동자는 KT라는 재벌 앞에서 목숨을 끊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 DNA 조사를 받아야 할 정도로 끔찍하게 훼손된 시신으로 장례식장도 차리지 못한 채 병원에 안치돼 있다.
해고는 죽음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임을 또 다시 증명한 이 죽음 앞에서 자유로운 해고 이전에 노동자들에게 인간으로서의 삶과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권리와 제도를 보장하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1997년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당시 정부와 자본, 보수정당들은 ‘대한민국호’를 살리기 위해서 일부의 고통과 희생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그런 이유로 ‘경영상의 이유’에 의한 정리해고제가 도입됐고, 파견법이 제도화됐다.
그리고 십수년이 흘렀다. 지금 ‘대한민국호’는 거의 난장판이다. 정부는 수출기업을 위해 환율을 관리하느라 물가를 대폭 올려놓았고, 그 때문에 서민들은 생계 곤란 지경에 이르렀다. 금융자본과 기업들은 수익경영을 외치면서 외주화와 정리해고로 노동자들을 실업자로, 비정규직으로 내몰고 있다. 중간층이라고 했던 계층은 산산이 몰락하고 있으며, 상위 계층 10%만이 안락한 삶을 누리는 것이 현실이다. 일하면 일할수록 더 가난해지는 워킹푸어족, 치솟는 월세값을 대지 못할 정도로 허덕대는 렌트푸어족 등은 이제 낯선 말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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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탁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연구원 |
일부 정당에서는 보편적 복지가 아니라 선택적 복지를 하자고 한다. 좋다. 선택적 복지라도 하자. 워킹푸어와 렌트푸어 노동자들, 일자리에서 쫓겨나거나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선택적 복지’라도 하자. 기업을 위해 희생한 노동자들에게 바닥을 향한 추락과 죽음을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현실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이제 대한민국의 노동자 민중들을 위해 기업과 자본, 그리고 부유층들이 희생과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십수 년 부자들을 위한 희생이 ‘대한민국호’를 정상적으로 만들지 못함이 증명된 이상 이제는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한다. 세계경제의 흐름을 보면 더블딥 기미가 점차 확연해지고 있다. 한국의 2012년 경제성장률이 2%대에 그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제 누군가 또 다시 희생하고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면 그것은 기업과 자본, 부유층이어야 한다.